'A 선수는 6년 180억원을 보장받았다던데요.'

'B 선수는 벌써 야구장 근처에 새 아파트를 마련했답니다.'

올 시즌 프로야구에선 정규 리그 중반부터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시즌이 끝나고 벌어지는 FA(자유계약선수) 협상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선수는 시즌이 마무리돼야 FA 자격이 생기고, 더구나 FA 협상은 정해진 기간에만 이뤄져야 한다는 게 KBO(한국야구위원회)의 규정이다. 그런데 선수와 구단의 협상 담당자가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구체적인 금액과 관련된 소문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진위도 알 수 없고, 출처가 불분명한 소식이 끊임없이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야구계의 공공연한 비밀인 '탬퍼링(tampering·사전 접촉이라는 의미)'이 원인이다. 규정에 따르면 FA 선수는 자격을 얻은 뒤 일단 원소속 구단과 먼저 협상해야 하고 결렬될 경우 타 구단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룰을 지키는 순진한 구단은 없다. 한 지방 구단 관계자는 "수준급 선수를 협상 기간에 만난다는 건 그 선수를 잡을 생각이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미리 타 구단과 비밀 접촉을 해서 자신의 '시장가'를 파악한 선수는 원소속팀과의 사전 협상 기간에 완벽한 '갑(甲)'으로 변신한다. 여기에 비공식 에이전트까지 끼어들어 뒤에서 다른 여러 구단과 흥정하는 위법을 저지르면서 FA 선수들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이다. 현재 KBO리그는 선수의 대리인 제도를 허용하지 않고 있으며 협상은 선수와 구단이 진행해야 한다.

한 수도권 구단 관계자는 "요즘은 불법 에이전트가 먼저 구단에 연락해 계약 얘기를 꺼내는 지경이 됐다"고 말했다.

결국 규정을 무시한 구단들의 조급한 처사가 FA 거품이라는 부메랑이 돼서 구단을 덮치는 상황이다.

KBO는 탬퍼링 규정을 어길 경우 해당 구단과 선수 간의 계약을 무효로 하고, 구단에는 3년간 신인 1차 지명권을 박탈하는 등 중징계한다. 그러나 지금껏 이 징계를 받은 구단은 하나도 없다. 동시에 야구계에서 탬퍼링이 공공연하게 이뤄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하나도 없다. KBO는 "하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아예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민훈기 야구 해설위원은 "FA 몸값 거품에는 모든 구단이 원죄를 지고 있다"며 "우선 협상 기간 제도 등 유명무실한 제도를 차라리 없애고 규정을 완전히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공급 확대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박충식 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은 "현재 선수들이 FA 자격을 얻는 데 걸리는 기간이 너무 길어(대졸 8년·고졸 9년) 시장에 나올 수 있는 선수들의 숫자 자체가 적다"며 "차라리 자격 획득 조건을 완화해 시장에 나오는 선수가 늘어나면 과열 경쟁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팀당 외국인 선수 보유 숫자(3명)를 늘려 각 팀이 전력을 강화할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