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역사에 고래가 동행한 시기가 있다. 18~19세기 가로등 불빛의 원천이 고래 기름이었다. 긴수염고래 한 마리에서 기름 6000여L가 나왔다고 한다. 고래 기름이 대량 공급되면서 사람들은 밤에 램프를 더 많이, 오래 켤 수 있게 됐다.
3일 개봉한 영화 '하트 오브 더 씨'(감독 론 하워드)는 바다에서 빛과 희망, 미래를 건져 올리던 시절의 이야기다. 소설 '모비딕'을 탄생시킨 에식스호(號)의 실화가 스크린에 출렁인다. 1819년 미국에서 출항한 이 배는 거대한 흰고래의 공격으로 난파당하고 선원들은 94일을 표류하다 일등항해사 체이스(크리스 헴스워스)와 선장 폴라드(벤저민 워커) 등 8명만 살아 돌아온다. 작가 멜빌(벤 위쇼)이 30년 뒤에 생존자 중 한 명을 취재하며 회상을 들려주는 형식이다.
영화는 가로등이 밝아지는 장면으로 열린다. 에식스호는 출항에 앞서 "저희가 잡은 고래 기름이 거리를 밝히고 어둠을 밀어내고 이 나라가 더 발전할 수 있게 굽어 살피소서"라는 기도를 들려준다. 태평양에서 허송세월하며 집으로 돌아갈 희망은 점점 멀어진다. 그때 30m 길이의 모비딕과 맞닥뜨린다. 컴퓨터 그래픽(CG)으로 살려낸 고래는 IMAX영화관에서 봐야 더 거대한 덩치와 움직임을 눈에 담을 것이다.
'하트 오브 더 씨'는 장단점이 또렷한 영화다. 관객은 '모비딕' 이야기에 숨겨진 반 토막을 만날 수 있다. 바다와 육지를 자주 왕복하는 바람에 뱃멀미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지, 어떤 악다구니로 살아남는지 보여주는 대목이 하이라이트다. 선원들이 가까스로 항구에 돌아왔을 때 환호성이라곤 없었다. 온통 침묵뿐이었다. 원제 'In the Heart of the Sea'. 121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