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 조선에는 19세의 나이로 집현전 학사가 된 천재 과학자가 있었다. 그는 당시의 국립천문대 격인 간의대(簡儀臺)에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쟀다. 이를 토대로 '1년은 365.2425일'이라고 규정했다. 이후 현대 과학이 밝혀낸 '365.2422일'과 소수점 세 자리까지 일치한다. 그가 바로 세종대왕의 명을 받아 이순지(李純之·1406~1465)와 함께 조선의 독자적 역법(曆法)인 '칠정산(七政算)'을 만든 김담(金淡·1416~1464)이다. 칠정산은 해와 달, 여기에다 화성·수성·목성·금성·토성을 더한 일곱 개의 움직이는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을 서술한 책이다.
내년 김담 탄생 600주년을 앞두고 오늘(24일) 고등과학원과 소남천문학사연구소, 한국과학사학회가 서울 홍릉에 있는 고등과학원 컨퍼런스홀에서 기념 학술대회를 연다. 이번 학회에 참석하는 과학자와 역사학자들은 "김담 선생은 역법의 독립을 넘어, 나중에 조선의 천문학을 서양의 케플러보다 앞서게 한 선구자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불행히도 그의 초상화 등 실제 모습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고등과학원 박창범(55) 교수는 이번 학회에서 세종 31년(1450) 조선과 중국, 이탈리아에서 동시에 이뤄진 혜성 관측에 대해 발표한다. 당시 세종의 명을 받고 천문 연구에 나섰던 김담이 이순지와 함께 이 혜성을 관측했다. 박 교수는 "그 혜성은 조선에서 관측된 9번째 혜성이었지만 이전의 관측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고 밝혔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혜성의 출현 방위와 별자리, 꼬리의 길이 등까지 관측·기술된 것이다. 박 교수는 "이후로 조선의 혜성 관측 기록이 크게 증가했다"며 "당시 김담의 혜성 관측이 조선시대 혜성 관측사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학회에서는 특히 예안 김씨 김담의 17대 후손인 김제완(83) 서울대 명예교수(물리학)가 독일 과학자 케플러와 조선의 1604년 초신성(超新星) 관측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초신성은 수명을 다한 별이 폭발하는 현상이며, 케플러는 행성의 운동 법칙을 정리해 태양중심설을 입증한 인물이다.
김 교수는 "조선의 천문 관측 능력은 당시 세계 최고의 천문학자로 알려진 케플러보다 더 뛰어났다"며 "김담 어른이 발전시킨 조선의 천문 관측 능력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밝혔다. 초신성에는 태양과 비슷한 크기인 1형(型)과, 태양의 10배 이상인 2형이 있다. 김 교수는 "조선에서는 초신성의 위치와 밝기를 정확히 관측한 것은 물론, 관측 횟수도 케플러의 4배 가까이 된다"며 "조선의 관측으로 당시 초신성이 1형임을 명백히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예안 김씨 문절공파의 시조인 김담 어른이 이미 600년 전에 시대를 앞서가는 뛰어난 과학자였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