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문학의 만남을 다룬 책이 잇따라 나왔다. 고대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와 철학자 플라톤을 비교한 '철학의 신전'(황광우 지음·생각정원 출판사),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풀이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메타포로 읽기'(최상욱 지음·서광사), 20세기 서양의 문학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친 보르헤스와의 대담집 '보르헤스의 말'(서창렬 옮김·마음산책)이 출간됐다.
'철학의 신전'을 쓴 황광우는 "검은 것은 흰 바탕 위에서 검게 보이지 않는가"라며 플라톤과 호메로스를 대조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생각을 지배한 신화의 세계관을 표현했다. 반면 플라톤은 시가 진리를 왜곡하고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비판하면서 철인(哲人)이 통치하는 국가에선 시인을 추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올바름이 신(神)적인 것이기 때문에 인간은 올바름을 추구해야 한다'고 봤다. 반면 호메로스의 시에서 신은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고 인간처럼 온갖 욕망에 사로잡힌다. 신은 인간 세계에 개입해 사건을 만들고 비극을 낳는다. 하지만 호메로스의 시에서 인간은 신에 복종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인간이 추구할 것은 몸의 즐거움이 아니라 영혼의 돌봄을 통해 신의 곁에 가는 것'이 철학의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니체는 플라톤을 '그리스 정신의 파괴자'로 여겼다. "니체는 플라톤의 사상에 숨겨진 신앙의 그림자를 발견해 철학의 자유를 위해 신을 살해한다"는 것.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메타포로 읽기'를 쓴 최상욱 강남대 철학과 교수는 니체의 글이 다양한 비유(比喩)를 활용했기에 철학이면서 동시에 문학 작품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니체는 인간 정신의 변화를 낙타, 사자, 어린아이에 비유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낙타는 허무주의를 상징하는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진 채 순종하는 정신을 가리킨다. 니체의 글에서 용(龍)은 낙타에게 '너는 ~해야 한다'고 명령하는 지배자의 상징이다. 사자는 용의 명령을 거부해 '나는 ~을 원한다'고 외치는 저항 정신이다. 니체는 사람이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거쳐 어린아이의 단계에 이르러야 한다고 봤다. "어린아이는 천진난만이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 최초의 운동, 거룩한 긍정"이라는 것.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1960년대 이후 미셸 푸코를 비롯해 현대 프랑스 사상가들에게 영감을 안겨준 시인·소설가·비평가였다. '보르헤스의 말'은 그가 여든 살을 맞아 미국의 시인·철학자 윌리스 반스톤과 나눈 대담집이다. 보르헤스가 마치 소크라테스처럼 대화를 통해 문학과 철학, 종교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인격을 지닌 신을 믿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 신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한다"고 했다.
보르헤스는 모든 말은 비유라고 강조했다. "언어는 화석이 된 시(詩)이고, 멋진 비유 그 자체인 거죠"라고 했다. 그는 "나는 모든 과거의 사도(使徒)"라고 했다. 인간이 지닌 것은 과거뿐이라는 것. 문학은 고대인들이 쓴 책을 다시 쓰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내 시가 누군가에 의해 다시 쓰이고 더 좋아져서 계속 살아남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호메로스처럼 위대한 시인은 불멸의 존재가 된다는 얘기다. 21세기에 들어 더 높이 평가받는 보르헤스는 호메로스처럼 시력을 잃은 시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