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이모(여·34)씨는 이번 추석 연휴가 시작하는 26일과 29일에 당직 근무를 선다. 타의가 아니라 자원한 것이다. 당초 29일 하루만 근무가 잡혀 있었는데, 같은 부서 후배의 26일 근무도 대신 서주기로 했다.

그가 휴일 근무를 택한 건 연휴 기간 시댁 식구와 부대끼고 집안일을 거들면서 생기는 ‘명절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다. 시댁 친지들에게 근무 핑계를 댔더니 “요즘도 그런 회사가 있느냐”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지만, 그는 내심 흐뭇하다. “회사 특성상 명절 연휴에도 매일 1명씩은 일하는데, 올해는 ‘운 좋게’ 나만 이틀 근무하게 됐다”고 했다.

2007년 9월 추석을 맞아 서울역으로 몰려든 귀성객들.

그의 시댁은 전북 전주다. 남편이 먼저 아이를 데리고 내려가고, 그는 추석 당일인 27일 시댁에 내려갔다 다음날 아침 바로 올라오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명절 연휴엔 직장 상사가 거의 출근하지 않아 시댁보다 직장이 훨씬 마음 편하고 좋다”고 했다. 남편도 그런 아내를 이해하고 가족들에게는 ‘비밀’로 해주기로 했다.

추석 연휴를 열흘 남짓 앞두고 여러 직장에서 “연휴 근무를 서겠다”는 직장인 여성들이 등장하고 있다. 대부분 결혼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여성들인데, 명절 스트레스를 줄여보려고 근무를 자원하는 경우다. “연휴 근무는 수당도 많고 대기 개념이라 업무도 많지 않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이들은 말한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병원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생겼다. 올 추석 연휴 당직 근무표를 보면 대부분 결혼한 여의사나 간호사들이라고 한다. 간호사 A씨는 “연휴 중 하루만 당직이어도 시댁이 서울·경기도가 아니면 가기 어렵다는 핑계를 댈 수 있다”며 “여의사와 간호사들 중에 하루라도 당직 근무를 하려고 연휴 당직표를 짤 때 서로 손을 드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회사 방침상 추석 연휴를 모두 쉬게 돼 불평하는 경우도 있다. 대기업에 다니는 30대 여성 B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명절 연휴 때 여직원들이 앞다퉈 근무를 하려 했는데, 올해는 회사에서 추석 연휴에 모두 쉬라고 하는 바람에 방법이 없다”면서 “차라리 어딘가 아프면 좋겠다고 말하는 동료들도 있다”고 했다.

명절 연휴 근무를 원하는 여성 직장인들이 일단 직장 동료와 근무를 바꾸고자 하면 대부분 ‘거래’는 성사된다. 추석 연휴 때 푹 쉬거나 여행을 다녀오려는 미혼 직장인들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번 연휴 때 여자 선배와 근무를 바꾼 미혼 남성 이모(31)씨는 “고맙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중에 내 아내가 저러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