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인데, 의사라고 처벌을 약하게 한 것 아니냐.”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에게 법원이 ‘신상공개’ 명령을 내리지 않은 것을 두고 처벌이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진수 판사는 지난달 28일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의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환자의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기소된 의사 A씨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A씨는 유죄가 확정되면 관련 법률에 따라 경찰서에 자신의 신상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성범죄자의 재범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다.

하지만 법원은 A씨에게 실형을 선고하면서도 ‘신상공개’ 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신상공개 명령은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성인을 대상으로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성범죄자의 이름·나이·사진·죄명은 물론 실제 주거지 등을 인터넷 사이트인 ‘성범죄 알림e’에 공개하는 것이다. 비교적 가벼운 성범죄에 대해선 경찰에 신상정보만 등록하고, 중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 신상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관련 법률은 A씨 같은 성범죄(성폭력범죄특례법상 카메라 등 이용촬영)를 저지른 피고인에겐 판결과 함께 신상공개 명령도 함께 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신상정보를 공개해서는 안 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에는 공개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A씨가 신상정보를 공개하지 않아도 될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 나이, 직업, 재범 위험성, 범행 내용 동기, 범행 방법과 죄의 경중, 공개명령으로 A씨가 입게 될 불이익과 그로 인해 달성할 수 있는 성범죄 예방효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했다. A씨가 잘못을 반성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겠다고 다짐하고 가족들이 선처를 호소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A씨는 유죄가 확정되면 상당기간 의료기관에서 일하지 못한다. 아동·청소년 등 성보호에 관한 법률은 의사가 성인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도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을 경우 10년간 병원을 새로 열지 못하고 의료기관에도 취업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임강석 사무관은 “성범죄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면서 의사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다”며 “유죄가 확정되면 A씨는 10년간 진료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의사라서 봐준 것 아니냐”며 형평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A씨는 자신이 근무하던 병원 산부인과 진료실에서 환자 신체 부위를 몰래 촬영했다. 그의 범죄는 지하철, 백화점 등 공공장소에서도 2년 넘게 137회 반복됐다. 10회에 걸쳐 촬영한 동영상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리거나 사람들과 맞교환하기도 했다. 초범(初犯)도 아니었다. 2012년 12월 비슷한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런 성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으면 도대체 누구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느냐는 것이다.

페이스북 이용자 김모씨는 “징역 1년도 약해 보이는데 신상공개조차 하지 않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 다른 인터넷 이용자 배모씨는 “재판부가 범죄자 가족의 호소를 참고했다고 하는데, 과연 137명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입장도 생각해본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처럼 성범죄자 신상공개 제도를 보는 시각은 여전히 엇갈린다. 일각에선 성범죄자로 신상이 공개되는 순간 낙인(烙印)이 찍혀 사회생활이 어려워지고, 이중처벌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동·청소년 등을 성범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고 더 과감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