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메이커 루이스 레지나토씨가 와인 블렌딩 시범을 보이고 있다.

와인은 서로 다른 포도 품종으로 만든 기초 와인(base wine) 여러 가지를 섞어 하나의 제품으로 완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 작업을 흔히 블렌딩(blending)이라고 하고, 블렌딩을 책임지는 사람을 와인메이커라고 한다.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와인 '까떼나 자파타(Catena Zapata)'의 와인메이커인 루이스 레지나토(Reginato)씨는 "블렌딩을 하는 이유는 쉽게 말하면 더 맛있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 어렵게 말하면 와인 맛의 복합성과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라고 했다. 블렌딩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최근 방한한 레지나토씨는 블렌딩을 인간의 몸에 비교해 설명했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4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단맛과 알코올, 신맛, 쓴맛(떫은맛)이죠. 단맛과 알코올은 와인의 기본이 되는 살 또는 육체입니다. 단맛과 알코올은 입안을 가득 채우는 풍성한 맛을 냅니다. 하지만 살만 쪄 있으면 튼튼하거나 아름다운 몸이 아니죠. 마치 비만이나 과체중인 사람처럼요. 몸이 바로 서려면 뼈대가 튼튼해야 합니다. 타닌에서 비롯된 쓴맛과 떫은맛은 와인의 골격에 해당합니다. 또한 인체가 아름다워지려면 근육이 필요해요. 신맛은 와인의 근육에 해당합니다. 달기만 한 와인은 쉽게 질려서 많이 마시지 못합니다. 적당한 산미가 받쳐줘야만 오래 즐길 수 있는 우아한 와인으로 완성되죠."

까떼나 자파타에서 생산하는 '까떼나 말벡' 와인은 말벡(Malbec)이라는 단 한 종류의 아르헨티나 토종 포도 품종으로만 만든다. 그런데도 블렌딩이 필요할까. 레지나토씨는 "포도가 자라는 포도밭의 토양, 포도밭의 해발고도, 포도밭의 일조량, 즉 하루·연중 얼마나 햇볕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같은 포도 품종이라도 맛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과거에는 여러 밭에서 나는 포도를 모두 한꺼번에 수확해서 모아다가 와인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밭별로 수확해 기초 와인을 만든 다음, 이 기초 와인을 특정 비율로 블렌딩합니다. 그렇게 해야 고급 와인을 만들 수 있어요. 블렌딩 비율은 매년 포도 작황·와인 맛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레지나토씨는 블렌딩 과정을 직접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지난해 만든 기초 와인 4병을 꺼내 4개의 잔에 각각 따랐다. 모두 말벡 포도 품종으로 만든 와인이었지만, 맛과 향이 서로 달랐다. "낮은 지역에 있는 포도밭은 기온이 더 따뜻하기 때문에 당도가 높은 포도가 생산됩니다. 와인의 당도와 알코올 도수가 상대적으로 높죠. 고도가 높아 기온이 낮고 햇볕은 강렬한 곳에서 자란 포도는 당도는 낮으면서 껍질이 두껍습니다. 단맛과 알코올은 부족하지만, 산도가 높죠. 쓴맛과 떫은맛도 강해집니다."

그는 투명한 플라스틱 빨대 모양의 피펫(pipette)이라는 도구를 꺼냈다. 피펫의 뾰족한 쪽을 와인에 담그더니 반대편 끝을 입에 물고 빨아당겨 와인으로 피펫을 채웠다. 그는 입에 물었던 쪽을 재빨리 손가락으로 막아 와인이 흘러나오지 않게 한 다음, 빈 와인잔에 피펫에 들었던 와인을 따라냈다. 같은 방법으로 다른 세 가지 와인을 와인잔에 따르고는, 네 가지 와인이 잘 섞이도록 잔을 흔들었다. 4가지 와인을 섞는 비율은 조금씩 달랐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원하는 맛의 와인 비율을 완성한 다음, 그 비율대로 기초 와인을 대량으로 블렌딩해 완성품으로 만든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