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한국에 왔을 때 TV 드라마를 차마 볼 수 없었다. 한국어 실력이 뛰어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또는 부잣집 남성이 가난한 여주인공에게 반해 사랑에 빠지거나(아니면 그 반대) 출생의 비밀이 있다는, 매번 형식이 같은 줄거리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뭔가에 반감을 느껴서 드라마를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처음에 싫어했던 것들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한국 드라마가 지난 몇 년 사이에 나아진 것일까, 아니면 내가 빠르게 한국화하고 있는 걸까.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는 만큼, 행복하게 끝나는 마지막 회는 여전히 실망스럽다. 마지막에 악녀 역을 맡은 장모나 시어머니는 기가 죽은 채 유치장에 들어가 있을 게 뻔하다. 반면 '착한 캐릭터'는 디즈니 만화 속 공주처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임신하거나 어릴 때 잃어버렸던 아이와 만나게 될 거다.
최근 푹 빠져서 본 드라마는 출산 장면으로 끝났다. 드라마가 끝나기 전 5분쯤 졸았는데 그때 임신과 관련된 장면이 나온 듯하다. 갑자기 드라마 속의 '착한' 등장인물들이 입이 찢어질 듯한 웃음과 함께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그 5분이 꽤 흥미로웠던 장면 같은데 조느라 놓친 게 아쉽기만 하다.
드라마 속 출산 장면을 보고 있으려니 정부도 만족스러워할 것 같다. 작년 한국 정부 조사에 따르면 24세 미만 한국 여성의 54%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 정부가 드라마 마지막 회의 작가로 비밀 요원(?)을 심어놨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출산 붐을 일으키기 위한 가장 기발한 시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