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지난 14일 핵협상 타결을 계기로 현 신정(神政) 체제는 유지하면서도 기존의 반서방·폐쇄주의 정책을 버리고 점진적 개혁을 시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최근까지 이란은 북한 못지않은 반미(反美) 국가였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가 무너지고 지금의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중동 최고의 친미 국가였다. 국제적 논란 속에 건국한 이스라엘을 '정상 국가'로 가장 먼저 인정해준 '무슬림(이슬람 신자) 국가' 가운데 하나가 이란이었다. 현재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 버려야 할 나라"라고 강하게 비방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된다.
팔레비 왕조 시대 이란인의 생활상은 지금과 180도 달랐다. 이란 여성들은 경전 코란 대신 영미권 패션잡지 '보그'를 즐겨 봤다. 1960년대 중후반 런던에서 유행했던 미니스커트를 거의 같은 시기에 입어 '중동의 패션 리더'로 불렸다. 이란 여성은 대학에서 짧은 소매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남학생과 어울려 운동했다. 연애도 공개적으로 했다. 이슬람 여성 의복 '히잡(머리 스카프)'이나 '차도르(몸매를 가리는 전신 망토)'를 입는 일은 드물었다. 존 F 케네디 미 대통령과 가깝게 지낸 팔레비는 시카고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이란 남학생뿐 아니라 여학생의 미 유학도 국가 사업으로 적극 추진했다. 당시 이란은 프랑스에 버금갈 정도로 유명한 와인 생산·소비국이었다. 특히 물이 풍부한 중부 도시 시라즈는 주요 와인용 포도 품종 중 하나인 시라즈의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시라즈 와인'은 유럽에서도 크게 사랑받았다.
팔레비는 이슬람 세력의 반대에도 이란을 종교적 율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사회로 만들려 했다. 영화관에서 포르노가 상영됐으며, 도심에선 술집·나이트클럽이 제한 없이 운영됐다. 젊은이들은 이슬람 사원 옆에서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는 팝송을 틀어놓고 따라 불렀다. 30년간 지속된 팔레비의 세속화 정책에 반발해 일어난 것이 1979년 혁명이었다.
하지만 그 후 30여년이 지난 지금의 이란 정권은 교조주의적 강압 통치 탓에 민심을 잃어가고 있다. 2009년 테헤란을 중심으로 대규모 반정부 운동인 '녹색 혁명'이 거세게 일어난 것이 예다. 현재 이란에서는 미국 인기 가수 음반의 해적판이 유통되고, 미 커피전문점 '스타벅스'를 모방한 '스타박스' 같은 카페가 유행하고 있다. 지난 70여년간 절반은 세속주의, 절반은 교조주의라는 극과 극을 경험한 이란인들의 실상인 것이다. 유달승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이란 정권이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핵협상 타결 이후 서방과의 경제 교류가 늘어나면서 이란 사회상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