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 전 총리는 이미 생전에 20년에 걸쳐 아들 리센룽 싱가포르 현 총리에게 권력을 이양해왔다. 전문가들은 체계적인 권력 이양 덕분에 리콴유 이후의 싱가포르가 당장 혼란에 빠지지는 않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민들의 주권(主權)과 경제 분배에 대한 욕구가 집권 여당의 노선을 바꿔나갈 것이라고 분석한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더디플로맷은 “리콴유는 경제 발전이 정치적 부족함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논리로 ‘실적 위주’의 정책을 펼쳤다”며 “하지만 싱가포르의 빈부격차가 커지면서 리콴유의 후계자들은 더 이상 같은 노선을 추구할 수 없게 됐다”고 했다. 리콴유가 이끈 경제 성장의 과실이 한쪽으로 돌아가면서 정부에 대한 불만이 거세지고 있다는 것이다. 빈부격차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2013년 기준 0.478로 선진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싱가포르의 최저 생활비는 월 1400~1500달러로 추산되지만, 인구의 10%가량이 월 1000달러 이하의 저소득층이다.

양극화 현상은 민심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 2006년 총선 당시에만 해도 리센룽 총리가 이끄는 인민행동당(PAP)은 투표로 뽑는 의석 84석 중 82석을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총선에서 사상 처음으로 야당 노동당(WP)이 6석을 차지했고, 이후 보궐선거에서도 야당이 연이어 승리를 거뒀다. 더디플로맷은 “싱가포르의 ‘유일한 선택지’였던 인민행동당이 민심 이탈을 막기 위해 정치 무대를 온건 야당에게 개방해나갈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총선이 정치적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장 위주의 리콴유식 경제 정책도 바뀔 전망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월 싱가포르 정부가 상위 5% 고소득층의 과세율을 20%에서 22%로 올렸다”며 “복지에 대한 더 많은 투자와 더 많은 분배를 약속하며 리콴유 자본주의를 수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경제 성장을 이끈 아버지 세대를 상징하는 리콴유의 사망으로 싱가포르의 정체성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싱가포르 작가 수드히르 토마스 바다케스는 "싱가포르의 저출산, 높은 이민자 비율, 세계화가 기성 세대에서 이어져 온 정체성을 바꾸고 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자녀 수)은 1.2명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고질적인 저출산으로 이민자 의존도도 높아졌다. 싱가포르 전체 인구 530만명 중 130만명이 이민자다.
양모듬 기자 modysse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