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후일담
“캐스팅이 관건”
2011년 3월 23일. 방송가에 전에 없던 형식의 다큐멘터리프로그램 이 처음 방송됐다. 일명 ‘애정촌’이라 불리는 장소에 짝을 찾는 싱글 남녀들이 초대되는데, 일주일의 시간 동안 마음 맞는 남녀가 짝을 지어 나간다. 애정촌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은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 대중에 공개된다. 남녀의 표정, 말투, 행동 하나하나는 상대의 마음을 굳히거나 바뀌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3년 가까이 이슈의 중심이었던 은 불미스러운 사건을 계기로 2014년 2월 막을 내렸다.
사실 이 처음부터 단일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것은 아니다. 2011년 신년 특집프로그램으로 제작된
“처음
이후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된 은 ‘짝을 찾아가는 과정’에 포커스를 맞췄다.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은 뜨거웠다. 고학력, 고소득의 남자, 늘씬하고 애교 많은 여자, 자유로운 영혼의 남자, 당차고 자존감 높은 여자…. 다양한 유형의 싱글 남녀가 열심히 자신을 어필했다. 어떤 부분은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작용했지만 어떤 부분은 의외로 반감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은 마치 책에 적힌 연애 이론을 실전에 적용한 결과와 같았다. 1+1은 2가 아니라는 공식 아닌 현실이 시청자들에게 어필한 것이다. 중국시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중국에서 제작에 관심을 보여 왔고 오랜 논의 끝에 지난 12월 촬영이 시작됐다. 현재 남 PD는 초기 컨설팅을 위해 중국과 한국을 오가고 있다.
“한국에서와 똑같은 시스템으로 만들고 있어요. (한국에서처럼) 한 기수당 2회 방송이고요. 포맷을 수출한 것이기 때문에 의상부터 구성까지 전부 같아요. 그게 성공 포인트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똑같이 구현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중국과 한국 의 가장 큰 차이를 묻자 농담 섞인 답이 돌아온다.
"한국 여자들이 예쁘다는 것? 한국 남자들이 재미있다는 것? 중국 남자들은 좀 점잖은 편인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고요.(웃음) 아직 한 달밖에 촬영을 안 했기 때문에 어떻다고 말하기엔 일러요. 제가 디테일한 언어까지 전부 알고 보는 게 아니기 때문에 놓치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요. 다만 한국에서는 제가 심혈을 기울여 캐스팅을 했다면 중국에서는 중국 스태프들이 캐스팅한다는 차이가 있겠죠."
캐스팅은 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실제로 남 PD가 한국에서 을 연출할 당시 가장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한 부분도 캐스팅이다.
"좋은 남녀가 애정촌에 등장하면 제작진이 굳이 어떤 장치를 만들거나 애태울 필요 없이 잘 흘러가요. 반대로 (캐스팅된 남녀가) 밋밋하게 가면 제작진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짜내거나 고생을 하죠. 그래서 캐스팅이 중요했어요. 아무나 출연시킬 수는 없으니 일정 수준 이상의 출연자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아 애를 많이 먹었죠."
일반인, 그것도 짝을 찾기 위해 얼굴이 공개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출연하겠다는 싱글 남녀를 매주 섭외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남 PD는 전략을 바꿨다.
"저는 어찌 됐든 이 프로그램을 대한민국 청춘남녀 누구나 나가고 싶어 하는 프로그램으로 선호도를 높여놓으면 캐스팅은 쉬울 거라고 판단했어요. 분명히 개중에는 방송을 좋아하는 사람, 방송을 통해 나를 알리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요. 여기서 나를 알린다는 건 흔히 말하는 홍보의 개념이 아닙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싶은 본능이 있다고 봐요. 그렇지 않으면 멋진 옷을 입거나 화장을 하며 뽐내고 다닐 필요가 없죠.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을 떠나서 기본적으로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싶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보거든요. 나를 알리고 싶고, 드러내고 싶고, 이성에게 관심 있는 사람들이 우리 프로그램의 출연 대상자라면, 저는 그중에서도 개성과 매력, 진정성이 있는 사람들을 잘 찾아내면 되는 거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출연자의 폭은 굉장히 광범위하다고 생각했어요."
'개성과 매력, 진정성' 있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제작진 전원이 총동원된 기나긴 면접이 뒤따랐다.
"면접 기준은 굉장히 심플해요. 기본 조건은 이 사람이 방송되기에 하자가 없는가, 인격적으로 깨끗한가, 도덕적으로 문란하지 않은가, 법적으로 흠이 없는가 하는 것들이죠. 그다음엔 이 사람의 매력과 개성이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지를 봐요. 특히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요. 상대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애정촌은 정말 재미가 없거든요."
그 매력이 꼭 예쁘고 잘생긴, 말하자면 외관상으로 뛰어난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예를 들어 시청자의 매력을 사로잡지 못하거나 개성이 다소 약한 출연자가 상대의 마음을 얻었어요. 그럼 그게 상당히 재밌습니다. 우리(제작진)는 저 사람이 밋밋하다고 생각했지만 그 사람이 애정촌에 와서 누군가의 마음을 얻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구애의 일들은 예상 밖의 재미를 가져다주죠. 그래서 초창기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 위주로 (캐스팅 여부를) 판단했다면, 노하우가 생기면서부터는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평범해 보여도 '저 사람은 애정촌에 가면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졌구나' 여부로 캐스팅 기준이 바뀌었어요. 전에는 눈으로 판단했다면 (노하우가 생긴 뒤엔) 마음으로 판단한 셈이죠."
수백 명의 싱글 남녀가 그와 함께 을 거쳐 갔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싱글 남녀의 유형과 성향에 도가 트이지 않았을까.
"3년 동안 6백77명을 만났어요. 매주 처음 만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조건을 따져보고 출연시킨 다음 일주일 동안 행동을 보고 심경을 듣고 감정을 관찰해서 정리하고 걸러내어 방송에 내보냅니다. 그 후에 여러 가지 리액션이 와요. 어떤 친구들은 강력히 항의하기도 하고 어떤 친구들은 굉장히 고마워하기도 해요. 1~2년 시간이 흘렀는데도 교류를 지속하는 기수가 있고 간접적으로 소식을 듣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제가 (방송 당시에는) 미처 못 봤던 면을 보기도 하고 실망하는 면이 생길 수도 있어요. 처음 만나면 알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진실에 가까운 것들이 드러나는 게 인간이잖아요. 제가 본 기간은 고작 3년이에요. 오랜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한국 남녀는 이렇다고 정의 내리기엔 짧은 시간이죠. 한 30년 연구하면 알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사건, 폐지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 어떤 발언도 할 수 없어"
매주 목요일 오전이면 포털사이트 이슈난을 도배하던 이 갑작스러운 위기에 처한 건 2014년 3월. 제주도에서의 촬영 중 한 출연자가 예기치 않게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SBS와 제작진을 향한 언론과 시청자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당시 남 PD는 천 일간의 애정촌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른 제작진에게 '촌장' 자리를 넘겨준 뒤였다.
어머니의 심정으로 의 더 나은 도약을 바랐지만 위기는 너무 빨리 왔다. 조심스레 그때의 심경을 물었다.
"매주 크고 작은 변수, 우리가 오판한 것, 기타 여러 가지 시련들이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있어요.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오늘 하루는 겸손해야 된다. 내 할 일만 떳떳하게 성실하게 잘 해나가면 된다.' 그런데 마지막은 굉장히 셌죠. 사실 그건 어떤 것과도 비교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가타부타 언급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누가 잘못했나, 왜 그랬나, 어떻게 결론을 내려야 하는가 등. 1년이 지난 지금도 얘기할 입장이 아니고요. 불행한 일이 생겼고 그에 대해 제작진이 책임을 졌고 SBS는 프로그램을 폐지하는 것으로 시청자들에게 용서를 구했어요. 굉장히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고, 개인적으로는 제가 만든 프로그램이 그렇게 바스러져서 없어진 것이 고통이었죠."
다른 때보다 더 길고 긴 답변이 이리저리 에둘러 돌아왔다. 다시 주제를 돌려 을 만들며 가장 보람되던 순간을 물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어리에서 수요일 밤 11시, 우리가 한번 굿판을 벌여보자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프로그램이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줄 때, 출연자들이 즐거워하고 행복해할 때 보람을 느낀 것 같아요. 세상이 주목하지도 않고, 이런 방송을 하는지 안 하는지도 모른다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었겠죠. 이왕이면 왁자지껄하게, 즐겁게, 기분 좋게 술 마시는 것 못지않게 시청자들과 한 시간을 재밌게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유독 많이 쏟아진 악플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안 좋은 기사가 나오거나 악플이 달리는 것도 관심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조차 시선이고 자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죠. 불우이웃돕기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고서야 좋은 말만 들을 수 없으니까요.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것은 단련하든지 견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곱지 않은 시선을 넘어선 악의성 기사에는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어떤 인터뷰도 피한 적은 없어요. 어떤 논란에도 자신이 있었거든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쓴 추측성 기사와 팩트를 바탕으로 한 기사는 누가 봐도 달라요. 그리고 이거()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아는 건 저희거든요. 특히 저거든요. 기사가 옳지 않은 부분에 대해 지적하면 수긍하고 반성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기사는…. 저한테 일어난 일은 제가 가장 잘 압니다. 진실은 제가 판단할 수 있고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얘기한 기사가 가장 섭섭하죠. 말하자면 이 (언론이 행한 매질의) 전면에서 피해자가 된 프로그램인데, 모든 진실은 당해본 사람이 가장 잘 압니다."
한편 그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로 '모태솔로'와 '돌싱(돌아온 싱글)' 특집을 꼽았다. 다른 케이스보다 과감한 이벤트를 펼친 기수가 모태솔로였고, 새벽 4시까지 소주병을 까며 돈독한 정을 나눈 기수가 돌싱이었다고.
"돌싱 기수들은 가장 강력한 비밀을 공유한 거잖아요. 방송에 출연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돌싱이라는 걸 숨기고 살았다든지 나름대로의 비밀로 간직했다면 애정촌에서는 그것들을 커밍아웃하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었던 것 같아요. 돌싱 특집을 하면서 '인생은 리얼이다'라는 생각을 특히 많이 했어요. (연애와 결혼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거죠. 꿈은 달콤한 말로 포장을 하며 환상을 좇는 거라면 현실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거니까요."
그는 PD라는 직업을 수단으로 창의성을 밑천 삼아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세상이 식탁이고 널린 게 맛난 음식"이라고 말하는 그에게 세상은 편의점처럼 골라먹는 재미가 있다. 그가 생각하는 PD의 자질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PD라는 직업이 특별한 직업은 아니에요. 카메라를 통해서 내 생각을 세상에 전할 거야, 라는 기본적인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다 가능하다고 봐요.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알고 행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무엇보다 따뜻한 가슴, 양심, 상식이 있는 사람은 창의성이 좀 떨어지거나 두뇌가 모자라도 좋은 PD가 될 수 있어요. 그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본이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