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73)·윤이남(68)씨 부부는 '닭살 커플'로 통한다. 함께 걸을 때 늘 손을 잡고 다니고, 카페나 밥집에 갔을 땐 꼭 나란히 앉는다. 남편 권씨는 관광업계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60대 초반에 은퇴했고, 아내 윤씨는 1967년 권씨와 결혼한 이후 세 자녀를 기르며 전업 주부로 살았다. 이들은 자녀가 결혼하고 난 후 둘만 살게 되고서야 본격적인 부부끼리의 생활을 시작했다. 올해로 15년째다.
이들은 매주 서너 번 정도 저녁 외식을 하고, 생일·기념일엔 깜짝 선물로 서로를 놀라게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국내 여행을, 1년에 두 번 정도는 해외여행을 한다. 2007년 충무아트홀에서 60대 이상을 대상으로 모집한 극단 '뮤지컬 실버파워'에 뮤지컬을 배워보겠노라고 입단해 뮤지컬 가수로 일하는 등 사회적으로도 활발하다. 남편 권씨의 은퇴와 자녀의 분가 후 '두 번째 신혼'을 즐기는 셈이다.
"제가 경상도 출신입니다. 중매로 만나 밥 딱 두 번 먹고 결혼했지요. 아이들 자랄 땐 내가 직장 생활이 바빠 집에 가면 '아는(애는)?' '밥도(밥줘)' '자자' 세 마디가 거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은퇴를 하고 아이들 출가시키고 나니 그제야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생기더라 이겁니다. 평생 처음 연애하는 기분이 들더라니까요, 하하."(남편 권씨)
"아이들 기를 땐 남편과 뭘 함께한다는 생각조차 못 했어요. 요즘은 같이 악기 배우고, 봉사 활동하고, 여행도 다녀요. 그동안 모아둔 돈과 연금 그리고 뮤지컬 출연료 등을 거의 우리 부부를 위해 써요. 자식들에게 재산 물려줄 생각은 별로 없고, 대신 용돈도 안 받아요."(아내 윤씨)
권영국·윤이남씨 부부는 가족 형태가 변하고 평균 수명이 길어진 결과로 부부 두 사람이 30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6075(60~75세) 세대 중 한 부부이다. 자식에게 의존했던 과거 '실버 부부'와 달리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금전적으로 독립적이며 자식 눈치를 보기보다는 부부의 즐거움을 먼저 챙긴다. 지금 한국엔 두 사람처럼 부부 둘이서만 사는 6075세대의 수가 300만명에 달한다. 21세기에 가장 빨리 성장하는 사회 집단 중 하나가 바로 '신(新)중년 부부들'이다.
◇'부부끼리' 최대 집단 1980년대 20대→2010년대 60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자녀가 분가할 때 집 한 채씩 사준 다음 자녀 집에 살면서 용돈을 받아 쓰는 모습이 '노(老)부부'의 전형으로 여겨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30년 전인 1985년 60~75세의 2명 중 1명(47%)이 자녀와 함께 살고 있었고 부부만 사는 비율은 17%에 불과했다. 그러나 30년 사이 신중년의 가족 형태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11년 조사 결과 신중년 부부의 절반(48%)이 부부끼리만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녀와 함께 산다는 비율은 27%로 줄었다.
과거에 '부부 둘만의 생활'은 신혼부부의 몫으로 여겨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실제로 1985년엔 부부끼리 사는 이들 셋 중 하나(30%)가 갓 결혼한 20대였다. 그런데 신중년 인구가 급증하면서 이런 사회상은 뒤집혔다. 통계청 인구·주택 조사의 가장 최근 자료인 2010년 조사 결과를 보면 '오직 부부'끼리만 산다는 사람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집단은 60대(27%)였다. 부부끼리 산다는 이들 중 20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4%, 30대는 12%에 그쳤다.
◇신중년 10명 중 7명 한 달에 한 번 이상 '성(性)관계'
과거의 60~70대보다 '몸'이 젊은 신중년 부부들은 성(性)적으로도 활발하다. 결혼 생활을 적어도 30년 이상 한 60~75세 사이의 한국 신중년 부부 10명 중 7명(69.3%)은 한 달에 한 번 이상 성생활을 하고, 한 달 평균 성생활 횟수는 1.5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가 결혼 정보 회사 '선우' 부설 한국결혼문화연구소에 의뢰해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 서울의 신중년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조사에 따르면 한 달에 4회 이상 잠자리를 한다는 신중년도 12.7%에 달했다. 응답자 중 한 달 7회 잠자리를 한다는 경우도 있었다. 2000년 한양대학교 간호학과가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설문했을 땐 한 달에 한 번 이상 성생활을 한다는 비율이 19%에 불과했다. 이웅진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소장은 "새로운 세대인 신중년은 과거보다 체력과 건강 수준이 높아지고, 비아그라(발기부전 치료제) 등 의학의 발달까지 더해져 성적(性的) 능력도 크게 향상됐다. 그 결과 신중년의 결혼 생활이 과거의 중년층만큼 역동적이고 활발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