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2일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에게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2심대로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확정했다. 내란 음모 혐의는 2심 판결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다른 피고인 6명에게도 2심이 내린 징역 3~5년과 자격정지 2~5년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이 전 의원 등은 2013년 5월 두 차례 모임을 통해 전쟁 발발 시 북한에 동조해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할 준비 방안으로 구체적 장소까지 거론하면서 통신·유류·철도·가스 등 국가 기간 시설을 타격하는 방법 및 그 수단으로서 무기 제조와 탈취, 협조자 포섭 등을 논의했다"며 "이는 가까운 장래에 구체적인 내란의 결의를 유발하거나 증대시킬 위험성이 충분해 내란 선동(煽動)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법원은 내란 음모(陰謀)에 대해선 "이 사건 모임 참석자들이 대한민국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물질적 준비 방안을 마련하라는 이석기 발언에 호응해 선전전, 정보전, 국가 기간 시설 파괴 등을 논의하긴 했으나 내란의 실행 행위로 나아가겠다는 확정적인 합의에 이르렀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내란 음모죄가 인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이석기 일파의 죄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내란 선동을 막지 못했다면 실행에 옮겨졌을지 모르고 그 경우 통신·가스·철도 등 국가 기간 시설이 파괴돼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대법원은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정부의 전쟁 대응 기능이 무력화돼 대한민국 체제의 전복(顚覆)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이들은 국가 타도와 무장 폭동을 선동한 점에서 다른 종북·친북 세력과는 차원을 달리해 대한민국의 존립과 안전에 중대하고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존재라는 결론이다.
이석기는 이날 대법원 판결 직후 오른손을 치켜들고 "사법 정의는 죽었다"고 외쳤다. 끝까지 양심수 행세를 한 것이다. 이석기 일파는 재판 과정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대한민국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라 해도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이 공동체를 폭력으로 뒤집어엎으려는 행위까지 무제한 허용할 수는 없다.
이석기는 1985년부터 북한 김일성 주체사상에 빠졌다고 한다. 1980년대 대학가에 주체사상을 유포시킨 김영환씨가 1991년에 만든 지하 혁명당인 민혁당의 핵심으로 활동했다. 김씨가 1990년대 후반 북한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민혁당 해산을 결정한 뒤에도 이석기는 끝까지 민혁당 활동을 이어갔다. 이석기는 2002년 구속됐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3년 형기(刑期)의 50%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특별 가석방됐다. 이어 2년 후 특별복권되면서 아무 제약 없이 선거에 출마하고 정당 활동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석기 일파는 2000년대 들어 노동자 단체 등이 주축이 되어 만든 민주노동당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편법과 탈법·불법을 저지른 끝에 민노당 당권을 장악했다. 이런 사실은 이들과 같은 정당에 몸담았다가 뛰쳐나온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통진당으로 당명을 바꾼 이석기 일파는 2012년 새정치민주연합과의 야권 연대를 통해 국회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새정치연합은 이석기 등이 국회의원이 되는 데 숙주(宿主) 역할을 했다.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종북 세력이 활개를 칠 수 있는 판을 깔아줬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대한민국 국회까지 거침없이 들어왔던 종북 세력은 지난해 말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에 이어 이번 대법원 판결로 결정적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체제 전복을 꾀했던 민혁당 관련자가 그 생각을 전혀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20년 만에 국회의원까지 됐던 것이 바로 이 나라의 현실이다. 핵무기를 손에 쥐고 언제든 이 나라를 공격할 태세를 갖춘 북한과 마주한 이 나라가 이래서는 안 된다. 종북 세력이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활개를 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한다. 이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대책과 국민적 동의가 다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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