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음악 관두겠다. 이런 음악은 들어본 적이 없다. 피아노 전주(前奏) 때 이미 의식을 잃었다.” 지난달 14일 SBS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4’의 참가자 이진아(24)의 노래가 끝난 뒤 심사위원 박진영의 호들갑이다. 나머지 심사위원도 “이게 음악의 힘”(양현석) “내가 지금껏 쓴 200~300곡보다 좋다”(유희열)고 격찬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격찬과 거리가 멀었다. 네티즌은 "심사위원 오두방정 때문에 안티팬 생기겠다"는 글을 쏟아냈고, 음악평론가 이대화씨는 트위터에 "비틀스 음악의 전주를 듣고도 의식을 잃은 적은 없다"며 "이런 막무가내 어법이 이진아의 음악적 미래에 해가 되진 않을지 걱정"이라고 썼다. 박진영은 이진아의 이전 공연에서도 "우리보다 잘하잖아. 우리보다 잘하는 사람을 어떻게 심사해?"라고 말했었다.
TV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평이 태도를 바꿨다. Mnet '슈퍼스타K', MBC '위대한 탄생' 등 심사위원의 거침없는 '독설'로 인기를 끈 오디션 프로의 판도가 '극찬'으로 옮겨가고 있는 것. 지난해 11월 종영한 Mnet '슈퍼스타K 6'의 심사위원 이승철 역시 "참가자들 수준이 올라가 독설보다 레슨을 할 것"이라 말하며 과거 독설가의 면모를 지웠다. 결승전에선 심사위원 세 명이 우승자 곽진언에게 99점을 줬다. "예술"이란 극찬이 따라붙었다. 독설에 대한 피로감이 커지자 극찬이 새 트렌드로 부상한 것이다.
지난 4일 'K팝스타4' 무대에 선 오디션 참가자 기다온(12)·박윤하(15)양에게도 "기립박수 쳐주고 싶은데 다리 힘이 풀려 못 일어났다"(박진영) "타고났다"(유희열) "시대를 안 타는 목소리다"(양현석) 등 칭찬 세례가 쏟아졌다. "세상이 팍팍하니 시청자들이 독설 마케팅보다 따뜻한 응원에 더 호응하는 것 같다"(Mnet '댄싱9' 이영주 PD)는 얘기도 나오지만, '역대 최고' '천재' 등의 수식어 남발이 "스타 만들기 전략 아니냐"거나 "연습생을 참가자로 심어놓고 띄워 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낳고 있다. SBS 박성훈 PD는 "초·중학생 등 참가자 연령대가 낮아지다 보니 마음의 상처를 염려하게 된 측면은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심사위원의 솔직한 평가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과찬이 오히려 오디션 참가자를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캐럴 드웩 교수는 1998년 ‘인격사회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천재라고 극찬을 해주다가 ‘알고 보니 그렇게 천재는 아니구나’라는 식으로 대하게 되면 아이들은 훨씬 큰 타격을 받는다”며 무분별한 칭찬의 교육적 역효과를 설명한 적이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절제를 잃은 칭찬을 통해 심사위원들은 자신의 취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게 된다”면서 “참가자들은 개성 대신 이에 부합하는 창법과 스타일을 구사하게 된다. 이미 그런 기미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