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한 교회 권사인 김모(54)씨는 해마다 이맘때면 '영수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연말정산 때 제출해 세금을 덜 내려고 '종교단체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기 때문이다. 김씨는 "한두 번 교회에 나와 소액 헌금을 한 게 전부인데 몇 백만원짜리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 달라거나, 아예 교회도 안 나오는데 '500만원 기부금 영수증을 10만원에 사겠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종교단체에 기부하면 과세 대상 소득의 10% 한도 내에서 그 금액에 15%를 곱해서 세액공제를 해준다. 가령 과세 대상 소득이 5000만원이 넘는 사람이 500만원짜리 기부금 영수증을 10만원에 사면 세금을 75만원 덜 내게 되기 때문에 65만원 이득을 보는 셈이다.
종교단체에서 먼저 불법 기부금 영수증 발급을 제안하는 경우도 있다. 경남 거제에 사는 불교 신자 이모(38)씨는 최근 한 절로부터 "기부금 영수증 필요하지 않으냐"며 "500만원짜리 영수증 끊어줄 테니 30만원만 시주하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솔직히 솔깃하더라"며 "주변에 물어보니 이미 공공연하게 소문이 난 곳으로 부산이나 창원 등 근처 대도시에서도 영수증을 사러 오는 경우도 있다더라"고 말했다. 근로자들은 세금을 덜 내게 되고, 기부금이 적은 작은 종교단체들은 가외 수입을 올릴 수 있어 양측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종교단체는 소득세 과세 대상이 아니라서 기부금 영수증 액수를 허위로 많이 적어 줘도 외형이 늘어나 세금 부담이 커질 염려가 없다.
송모(51)씨는 절에서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끊었다. 그는 "서울서 대기업에 다니는 딸아이가 아직 미혼인데 부양가족이 없다보니 세금을 더 내야 하더라"며 "다니는 절의 총무한테 부탁해 기부금 영수증을 하나 만들어줬더니 세금 내는 게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국세청이 홈페이지에 게시한 불성실 기부금 수령 단체 명단을 보면 거짓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한 단체 총 102곳 중 91%(93곳)가 종교단체였다. 지난 30일 대구지검 의성지청은 신도가 아닌 사람에게 금품을 받고 연말정산용 허위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해 준 혐의로 경북 의성의 한 사찰 주지 지모(58)씨를 구속기소했다. 지씨는 2011년 12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회사원 및 공무원 529명에게 6424만원을 받고 20억4700만원 상당의 허위 영수증 총 748매를 발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입력 2015.01.0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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