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최고급’의 뜻으로 제품명에 ‘나이론’을 넣은 화장품 광고(첫째와 가운데는 조선일보 1959년 11월 22일자, 아래는 1959년 12월 17일자).

오늘날 '나이롱'이란 단어가 들어간 말치고 좋은 뜻의 어휘가 별로 없다. 아픈 척하는 '나이롱환자'로부터 건성건성하는 '나이롱훈련'이나 '나이롱박수'까지 가짜나 엉터리를 뜻한다. 하지만 50여년 전 우리나라에서 '나이롱(나일론)'은 고급을 뜻했다. 나일론(nylon) 옷은 고급 사치품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나일론이 한 올도 들어가지 않은 상품 이름에도 '최고' 이미지를 차용하려고 '나이론'을 갖다 붙였다. 1950년대 후반의 화장품들 이름이 그랬다. 오드리 헵번, 폴 뉴먼 등 톱스타 사진을 광고에 도배하며 최고임을 내세운 화장 크림의 이름은 '나이론 바니싱 크림'이다(조선일보 1959년 12월 17일자). '근대 과학이 낳은 야심작'이라는 포마드 이름도 '나이론 포마드', 기미·여드름 잡는 '경이적' 화장품은 '나이론 후랙클 크림'이다(조선일보 1959년 11월 22일자).

1938년 미국 듀폰(Dupont)사가 만든 최초의 합성섬유 나일론은 1950년대 중반 국내에서 크게 유행했다. 그땐 값싼 합성섬유가 아니라 '현대의 견(絹)으로 알려진 에레간트(elegant)한 신(新)섬유'였다(조선일보 1968년 2월 8일자). 치마, 적삼은 물론 양말에 장갑에 와이셔츠, 러닝 셔츠와 속옷까지 '나이롱 아니면 못 입겠다는 게 문화인들의 자랑'이었다. 이승만 정부는 사치 풍조 배격을 위해 나일론 수입을 금했지만 밀수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 17세 소녀는 부모가 나이롱 치마를 안 사 준다고 자살했다(경향신문 1957년 5월 19일자). '나이롱' 이미지가 좋다 보니 고급 오이, 커피, 두부 이름에까지 '나이롱'을 접두어처럼 붙였다. 재래종 참외를 개량한, 달고 아삭한 참외는 '나이롱참외'로 불렸다.

하지만 자연의 가치를 높이 보는 시대가 되면서 나일론은 흡습성·통기성 등이 떨어지는 인공물질로 격하됐다. 고급을 뜻하던 '나이롱'이란 말도 '겉만 그럴싸한 가짜'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사실 나일론의 인기가 절정이던 1954년에도 이미 '바람 안 통하고 겨울엔 차가워 외국에선 노동자들이나 입는데, 나이롱 선풍이라니 한심하다'는 반성이 있었다(조선일보 1954년 12월 23일자). 그러나 질긴 것이 미덕이었던 60년 전, '강철보다 강하다'고 허풍 떤 나일론에 대한 비판론은 주목받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 나일론 옷감의 인기는 식었지만, 최근 나일론에 구리를 입혀 만든 '쿱루스(cuprus)'라는 신소재 섬유가 보온성이 뛰어나 방한복에 채택됐다고 한다(조선일보 2014년 12월 2일자). '나일론 선풍'이 부활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