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혜린의 스타라떼] 평범함의 대명사, 직장인이 이같이 뜨겁게 조명된 적은 없었다.

tvN '미생'의 바람을 타고, 지난 주말 TV는 직장인들의 애환에 포커스를 맞추며 아주 흔하면서도 결코 그려내기 쉽지 않았던 평범한 직장생활을 묘사했다.

'미생'은 그동안 뉴스조차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던 '비정규직'의 딜레마를 몰입도 높게 담아냈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미생'에서 장그래(임시완 분)는 요르단 사업 관련 PT를 성공시킨 기쁨도 잠시, 자신이 비정규직 처지임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회사에서 비정규직이란, 일이 잘 풀릴 땐 '우리'고, 안 풀릴 땐 '남'인 존재다. 설 연휴를 앞두고 정규직에게 주어지는 스팸세트, 비정규직에게 주어지는 식용유 세트는 이들이 한 공간 안에 있지만 명백히 다른 '신분'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설정. 장그래가 그토록 좋아했던 '우리'가 허상에 지나지 않았음이 확실해졌다.

장그래는 왜 평소처럼 빠릿빠릿하게 일하지 않느냐고 구박하는 오차장(이성민 분)에게 "평소대로만 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느냐"고 묻는데, 여기에 "맞다"고 대답하면 바보다. 일반 트렌디 드라마라면 장그래는 대졸자를 모두 따돌리는 신의 능력을 입증해내서 보란듯이 정규직행 티켓을 따겠지만, 이 지극히 현실적인(오차장 캐릭터는 빼고) 드라마에서 장그래의 미래는 그와 같은 핑크빛이 될 리 없다.

비슷한 환경에 처한 현실 속 미생들은 비정규직 문제가 대두된지 십수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드라마 안에서 제대로 자신을 대변하는 캐릭터를 만난 셈이다.

이 드라마의 열풍을 타고 지난달 30일 SBS '런닝맨'도 직장생활백서를 마련했다. 첫번째 미션은 만원 지하철역 벗어나기. 반대 방향으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을 뚫고 지하철 역 계단을 뛰어오르는 시간을 재는 방식이다.

'런닝맨'은 또 본부장이 3등을 원한다며 일부러 3등에 끼워맞추는 체력 테스트에, 최종 우승에 앞서 라인을 나누는 등의 형식으로 직장인의 삶을 풍자했다. 어려운 미션들을 다 겪어놓고 최종 우승은 복불복에 가까운 가위바위보로 정해버리는 황당한 결론은, 제작진이 의도했든 아니든 허무하고도 씁쓸한 직장 생활 속 경쟁을 암시하는 것 같기도 했다.

KBS '개그콘서트'는 첫 코너 '렛잇비'에서 직장인들의 공통된 불만을 짚었다. "여사원들도 라인이 있어야 된다. S라인. S대도 못이기는 S라인"이라고 비꼬면서 노래하는 장면은 여성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그러면서 또 다른 코너 '사둥이는 아빠딸'은 지독한 외모 차별을 너무나 당연하게 그려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그 외에도 일을 다 마쳐도 상사의 일이 안끝나면 퇴근을 못하는 상황, 술자리서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다가 금방 정색하는 상사 등도 그려내 공감 지수를 대폭 높였다.

조금 다른 예지만 이날 재방송된 SBS '피노키오'도 수습기자들의 직장 생활을 본격적으로 그려내며 신입사원들의 공감대를 노렸다. 열악한 기자실에서 다른 매체 기자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수습 기자들의 모습은 국내 드라마 '역사상' 기자를 가장 현실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평가할 만했다. 사수가 '전화는 세번 울리기 전에 받을 것' 등을 지시하는 대사는 실제 기자들의 대화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이 드라마는 그외의 현실지수로는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상황. 가상의 증후군 피노키오는 차치하고라도, 각 주인공들이 지나치게 우연으로 얽혀있고 시청자들의 가장 큰 지지를 얻어야 할 여주인공이 너무나 큰 특혜를 입어 특채로 방송사에 입사하는 설정은 영 아쉽다. 또 다른 남자 주인공은 한달 공부해서 기자가 되는 천재에, 또 한명은 당최 정체를 알 수 없는 재벌2세이기도 하다.

물론 100% 현실, 평범함만을 그려내는 게 직장인의 위로를 보장하진 않을 터. 실제 '미생'이 암울해서 못보겠다는 사람들이 꽤 있다. 평소에 너무 우울하니 TV라도 밝고 희망차길 바라는 심리도 분명 있다. '별그대' 같이 외계인과 톱스타가 등장하는 판타지가 주는 위안을 폄하할 필요는 없다.

다만 현실감 넘치는 직장 묘사가 일반 대중의 이해도를 높이는 순작용을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높이 평가할 만하다.

드라마의 메인 캐릭터가 비정규직이라는 자신의 처지로 딜레마를 겪는 장면, 유명 개그맨이 대중교통 출퇴근의 비애를 재현하는 장면은, 그동안 '평범하다'는 이유로 오히려 일반 대중(평범한 사람도 포함한)의 외면을 받았던 보통 사람들의 상황에 새삼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는 계기가 분명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 화려한 장면을 보고, 대리만족하면서 정작 자신의 문제는 남의 일로 치부해온 아이러니도 어느 정도 개선되지 않을까 기대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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