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음반을 11년이나 기다리는 것은 매우 지치는 일이다. 끝내 그 음반이 나오리라 믿기에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기타리스트 이병우(49)의 여섯 번째 독집이 나온다. 8년 만에 나왔던 2003년 '흡수' 이후 11년 만이다. 반갑고도 얄밉다. 그는 26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기타중독'이란 공연도 연다. 이 무대에서 새 음반 수록곡들을 들을 수 있다. 앨범은 이달 중 출시될 예정이다.
조동익과의 듀오 '어떤날'을 거쳐 한국 최초의 기타 독집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항해'를 비롯한 독집 5장을 냈고, 2000년대 들어 영화음악가로 외연을 확장한 이 독창적 감성의 음악가를 지난 6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새 앨범에 수록될 곡 중 7곡을 라이브로 연주해 보였다. 그의 기타는 듣는 이를 마술사 앞의 어린이처럼 들뜨게 만들다가, 야바위꾼 앞의 촌놈처럼 멍하게도 만들었다. 고진(苦盡)이면 감래(甘來)일지니, 오랜 기다림 끝의 만남이란 얼마나 달콤한가.
"5집 때는 그야말로 8년 만에 새 음반을 냈지만, 이번엔 11년 만에 냈다고 할 수 없어요. 그간 영화음악으로 계속 내 음악을 발표해 왔으니까요. 다만 그사이 기타 앨범을 두어 장 내려고 했었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았죠."
그는 '기타 우울증'에 걸렸었다고 고백했다. 자신의 기타 스타일을 만들어야 하는데 오랫동안 해온 작업이 뭔가 잘못된 것같이 느껴졌고, 다시 시작하려다가 그만 그 우울증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기타 우울증'에서 최근 빠져나온 뒤 본격적으로 새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새 앨범에는 '대항해' 시리즈 3곡이 실린다. '흡수' 앨범의 '달려' 시리즈 3곡처럼 같은 주제를 여러 가지로 변주하는 형식이다. 첫 번째 곡은 출항(出港)의 설렘을 묘사하듯 빠르고 경쾌하게 전개된다. 두 번째 곡은 밤바다의 고요가 느껴지고, 세 번째 곡은 뺨에 닿는 순풍이 느껴지는 연주곡이다. 이병우 특유의 감수성, 장조(長調)의 음계를 오르내리는데도 쓸쓸한 공간감이 느껴지는 곡들이다.
이어지는 곡은 '아버지의 편지'였다. 그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보내주셨던 몇 통의 편지를 생각하며 쓴 곡"이라고 했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와 미국 피바디 음악원에서 유학하던 시절 받은 편지들이다. "평상시엔 무뚝뚝한 분이셨어요. 말로 하기 서먹서먹하니까 편지로 쓰신 거죠." 그는 지난 앨범에 '어머니'란 곡을 실었었다. 깊은 밤 홀로 깨어 바느질하는 어머니의 뒷모습 같은 곡이었다.
재치와 장난기가 담긴 곡은 '나는 네가 이상해서 좋더라'는 연주곡이었다. 그는 이미 '뭐가 그리 좋은지' '쥬브 수영' '축! 결혼' 같은 곡에서 기타 한 대가 그릴 수 있는 회화(繪畵)의 진경(珍景)을 선보여왔다. 이번 앨범에서는 이 곡이 그런 트랙이 될 것이다.
이병우는 새 앨범에 드디어 애국가를 싣기로 했다. 1980년대 들국화 공연의 게스트로 나와 들국화보다 더 큰 박수와 함께 앙코르 요청을 받았을 때 재미 삼아 연주했던 애국가는 오랫동안 그의 공연 오프닝 또는 엔딩곡이 됐다. 기타는 테크닉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어떤 몰입된 감정이 손가락 끝을 인두처럼 달군 뒤 현(絃)을 퉁겨 관객에게 이입(移入)되어야만 완성된다. 이병우는 줄곧 그 기타의 완성에 매진해 왔다.
"12월에 개봉할 영화 '국제시장' 음악을 얼마 전 끝냈어요. 사실 '관상' 이후로 영화음악을 안 하려 했는데, 부산영화제에서 만난 윤제균 감독이 사람들 앞에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꼭 맡아달라'고 해서 '국제시장'까지 했지요. 앞으로는 기타 연주를 더 많이 하고, 작은 공연장에서 더 많은 관객을 만날 생각이에요."
새 앨범 제목은 '우주기타'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우주에서 왔어요. 기억력이 나빠서 내 코드네임은 까먹었는데, 어쨌든 기타를 치기 위해서 우주에서 온 거예요." 매일 아침 정성스레 머리를 면도하는 그의 머리가 좀 달라 보였다. 공연 문의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