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미국 거부(巨富) 애스터 가문의 상속자 윌리엄 월도프 애스터는 숙모가 영 못마땅했다. 숙모는 뉴욕 사교계에서 '애스터 부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자기 아내가 가문의 여자를 대표하기 때문에 '애스터 부인'이라고 할 사람은 숙모가 아니라 아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893년 숙모 집 바로 옆에 13층 월도프 호텔을 지었다. 깜짝 놀란 사촌 존 애스터는 어머니 거처를 옮기고 호텔 사업가 조지 볼트의 도움을 받아 월도프 호텔 옆에 17층 아스토리아 호텔을 지었다.
▶집안싸움에 얽힌 볼트는 곤혹스러웠다. 그러면서도 결국 호텔 운영 경험이 없는 애스터 가문의 두 사람을 대신해 두 호텔 경영을 모두 꿰차게 됐다. 볼트는 두 호텔을 합쳐 '월도프아스토리아'로 개명하고 당대 세계 최대 호텔로 만들었다. 그는 미·캐나다가 국경을 맞댄 세인트 로런스 강의 1800여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사우전드 제도(諸島)에 별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유래했다는 사우전드 아일랜드라는 샐러드드레싱을 호텔 식당 메뉴에 넣어 전 세계에 유행시켰다.
▶원래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 자리엔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이 들어섰다. 대신 호텔은 1931년 그랜드센트럴역 북쪽에 신축 부지를 찾았다. 47층 건물은 당시 세계 최고층 호텔이었다. 룸서비스도 세계 처음이었다. 여러 나라 정상이 뉴욕을 찾을 때면 묵었고 영화 촬영지로도 이름났다. 호텔 재벌 콘래드 힐튼이 1949년 300만달러에 사들여 힐튼그룹 소유가 됐다.
▶엊그제 힐튼그룹이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을 중국의 안방(安邦)보험에 2조원에 팔기로 했다고 밝혔다. 호텔 인수 역사상 가장 비싼 가격이다. 중국의 미국 부동산 최고가 매입 기록도 갈아치웠다. 지난 6월 중국의 부동산 갑부 장신(張欣) 소호차이나 회장이 뉴욕의 50층 GM 빌딩 지분 40%를 1조5000억원에 사들인 지 넉 달 만이다.
▶월도프아스토리아 호텔까지 중국 자본에 넘어가는 걸 보며 '재패니스 인베이전(일본의 침공)'을 떠올렸다. 일본은 1980년대 엔고(高)를 앞세워 뉴욕 심장부 록펠러센터를 비롯한 미국 부동산을 대거 사들였다. 그러나 일본의 미국 부동산 투자는 거품이 꺼지면서 실패했다. 록펠러센터를 샀던 미쓰비시는 미국의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2조원 넘는 손실을 보고 6년 만에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벌써부터 뉴욕 맨해튼 부동산 가격이 중국인들의 투자 때문에 과열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국이 일본처럼 미국 부동산 시장에서 눈물을 흘릴지 아니면 웃을지 지켜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