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일(66)이라는 이름이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93년이다. 정씨는 그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슬롯머신 사건'으로 죽을 때까지 '슬럿머신의 대부'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슬롯머신 대부로 불리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씨가 지난 15일 심장마비로 숨지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80년대 중반까지 일부 호텔에서만 영업한 슬롯머신 업소는 서울올림픽 이후 1990년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993년 당시 서울에만 79개 업소가 문을 열였고, 전국적으로 330개가 넘는 업소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당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슬롯머신을 막을 법적 제도적 장치도 미비한 상태였고, 사정당국의 단속 역시 사실상 없었다. '돈이 있는 곳'에 조폭이 어김없이 등장하는 법.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슬롯머신 사건'의 배후에는 당시 주먹세계 대부로 군림한 정씨의 동생 정덕진씨도 있었다.

이들은 호텔 등을 중심으로 설치된 슬롯머신 업소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며 호황을 누렸다.

당시 이들 형제에게 돈을 받지않은 사회 유명 인사들이 없었고, 유력 정치인과 사정당국의 고위층들이 비호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도 세간에 떠돌았다.

정씨는 사업 확장과 자신들의 비리를 덮기 위해 '검은 돈'을 뿌려댔다. 검은 돈에 중독된 사회 고위층 인사가 한 둘이 아니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 최고 실세로 불린 '박철언 의원'까지 포함돼 있을 정도로 검은 돈의 뿌리는 깊고도 단단했다.

그의 화려한 전성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철퇴를 맞았다. 1993년 김 전 대통령은 사정당국에게 '거악(巨惡) 척결'을 지시했다.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의 홍준표 검사(현 경남도지사) 등은 정씨와 그를 비호한 조폭, 정치인, 검찰 등 사회 전반에 걸쳐 검은 돈의 흔적을 쫓는데 치중했다.

당시 어떤 사회 고위층이 슬롯머신 운영권을 따내기 위해 새로 짓는 관광호텔 사장의 검은 돈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정씨의 큰형 정덕중씨는 강원도 원주에서 정치에 발을 들여놨다. 이를 계기로 정씨는 1992년 당시 대선후보였던 YS의 선거운동을 적극 가담했다. 그는 "YS가 친아들처럼 대해줬다"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씨 일가는 YS가 휘두른 매서운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셈이다. 검찰 수사결과 관료와 정치권 등 사회 거물들이 물고 물리는 검은 돈 커넥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홍 검사는 이들 형제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검찰에 자진 출두 의사를 밝혔는데도 전날 호텔에 머물고 있던 정씨를 체포했다.

검찰은 세무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10만 원권 수표 5억 원이 든 가방을 박 의원에게 전달한 사실 등 각종 비리 사실을 밝혀냈다. 박 의원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결국 박 의원을 비롯해 엄삼탁 전 안기부 기조실장, 이건개 전 대전고검장 등 고위층 인사가 줄줄이 구속되는 장면이 연출됐다. 이후 홍 검사는 일명 '모래시계 검사'로 유명세를 탔다.

연일 언론에 이름을 올리면 떠들썩했던 정씨도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잊혀지기 시작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 이후 그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정씨는 최근 300억 원 규모의 제주도 부동산을 '경매 사기를 당해 헐값에 빼앗겼다'며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면서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소위 잘나가는 연예인들까지 대거 동원해 군 위문공연을 다니며 일부 연예인에게 수억 원이 넘는 용돈까지 쥐어주면 승승장구했던 정씨의 빈소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순천향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