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하이틴스타 박준희가 오랜만에 음반을 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대중과 떨어졌던 17년이라는 시간. 그동안 소녀는 어른이 되었고,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

박준희는 머릿속에 항상 그림을 그린다. 나의 10년 후의 모습, 20년 후의 모습, 30년 후의 모습. 이번에 본인의 앨범을 낸 것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 17년 전 가수를 그만둘 때 그린 그림 중 하나다. 어려서부터 꿈꾸던 댄스가수의 삶은, 화려하고 좋았지만 행복하지 않았더란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은 지금이 아니라도 할 수 있잖아. 차라리 내 힘으로 음반을 만들기 위한 경험을 쌓자. 10년은 걸리겠지?’ 그러면서 음반 제작도 해보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하고, 글도 많이 쓰면서 살았어요. 제힘으로 멋진 음반을 내고 싶었거든요.”

‘눈 감아봐도’라는 데뷔곡으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가수는 이제 넉넉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소탈한 마흔의 여성이 됐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성격도 많이 유해졌고, 삶의 지혜도 얻었다. 대중에게 보이는 일은 아니었지만 보컬 트레이너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대기업 임원들을 위한 강연도 하면서 본인의 영역을 꾸려왔다. 5년 전에는 결혼도 했다.(작사가 홍지유가 그녀의 남편이다.) 본인이 그렸던 그림 속에 있던 음반이

다.

“오랜만이라 긴장했는데 다행히 호평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동안 음악과 아주 동떨어진 삶을 산 건 아니라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많이 공감해주셔서 신이 납니다. 조금 더 일찍 내지 그랬느냐는 말씀도 듣는데, 전 지금이라서 더 좋은 것 같아요. 그 시간 동안 저는 내공을 쌓았고 음악적인 깊이도 생겼으니까요.”

무엇보다 음반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가 좋고, 판매량도 심상치 않다. SNS에 구매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더니 급기야는 2차 주문에 돌입했다. 다시 노래해줘서 고맙다는 말, 이런 음악이 듣고 싶었다는 말은 요즘 매일 그녀를 감동시키고 있다.
"신비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분들도 계신데, 전 마음 가는 대로 진심에 충실하는 것이 맞는다고 봐요. 사람들에게 '제 음악 한번 들어보세요'라고 말하면서 소통하는 것이 훨씬 좋아요. 중요한 건 절 지지하고 좋아하는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는 것이죠."

매니저도 없이 혼자서 활동을 하는 그녀는, 이 과정 하나하나가 즐겁다. 연예인이라는 타이틀을 벗은 시간 동안 그녀는 이렇게 사람들과 소통하고 교류하는 법을 배웠다. 당연히 친구도 많다. 가수 현진영은 자처해서 뮤직비디오에 출연해줬고, 각 분야의 지인들은 든든하게 음반활동을 응원하고 있다.

노래하는 작가
"마흔은 조급함이 살짝 오는 나이예요. 여자로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하고,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마음도 생겨요. 동시에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는 자신감이 드는 나이이기도 해요. 다 잃어도 된다는 힘, 남들이 뭐라고 말해도 괜찮은 단단함이 또 이 나이에 와요."

지금 마흔의 박준희에게서는 단단한 자존감과 함께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느낌도 있다. 결혼 5년 차에 접어든 사람이 혼자 제주도로 배낭여행을 다녀오는 등 틈만 나면 여행 가방을 꾸린다. 인기나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고 본인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태도가 만든 결과다.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을 생각하며 살아온 시간은 결국 본인이 바라던 사람이 되도록 도와줬다. 본인은 '늦바람이 들었다'라는 표현을 썼다.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습관인 것 같아요. 부모님이 제주도에 계셔서 자주 다니다 보니 혼자 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더라고요. 문득 배낭여행을 떠나보고 싶었어요. 버스만 타고 제주도 일주를 해봤어요. 걸어가면서 주변의 꽃도 보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면서 굉장한 감동을 받았어요. 어디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어요. 전 평소에도 무엇을 하든 나이 들면 못 하겠다 하는 걸 하는 편이에요.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이잖아요.”

덕분에 결혼한 여자의 포스가 없다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결혼 5년 차인 그녀는 부부 관계도 공평하고 자유롭게 이어가고 있다. 평범한 부부들과는 다르지만, 작업실을 함께 쓰는 두 사람은 음악이라는 공통분모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보내고 있다. 결혼을 했다고 해서 서로의 일상을 컨트롤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기에, 어디로 떠나든 무엇을 하든 본인이 중심이 된다.

“둘 다 음악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서 말이 잘 통해요.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요. 그렇다고 주부로서의 생활에 소홀한 것은 아니랍니다. 제 SNS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매일 아침 구첩반상을 차려줘요. 제가 요리에도 관심이 많은 데다 남편에게 제대로 된 밥을 대접해주는 것이 존중의 마음을 전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웃음)

요리 실력뿐 아니라 그녀는 재주가 굉장히 많다.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배우기를 즐긴다. 악기를 배우고, 초를 만들고, 요리를 배우고, 야구도 한다. 가수를 그만두고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시절에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도 그렇게 본인의 것이 됐다.

“저는 늘 그림을 그리는데요. 10년 후, 20년 후 나중에 나이가 들면 머리 긴 백발의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빨간 지프 트럭 타고 다니는!(웃음) 제주도에 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거기 예쁜 집 짓고 바다가 내다보이는 시원한 테이블에 앉아서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인생의 맛, 자유로움의 맛을 알게 된 박준희는 요즘 아주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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