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 앤 북스 대표

부화뇌동(附和雷同)이란 말이 있다. 자신의 소신 없이 남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을 말한다. 부화뇌동하면 평균은 한다. 남들이 많이 보는 책이나 영화를 보고, 남들이 입는 옷을 따라 입고 남들이 많이 먹는 음식을 따라 먹으면, 이른바 중용지도(中庸之道)를 지키는 사람으로 포장된다.

출판사들이 베스트셀러 순위 조작을 통해 판매량을 올리려는 고육지책을 쓰는 것도 부화뇌동의 군중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출판사보다 한 수 위인 영화사들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영화 '명량'이 각종 흥행 기록을 갈아치운다기에 부화뇌동하기 위해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다. 다 아는 스토리건만 영화는 감동적이었다. 목이 메었다. 아마도 천만명도 넘는 우리 국민이 부화뇌동해서 이 영화를 찾을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국민의 집단행위 속에는 부화뇌동 이상의 어떤 절실한 갈구가 있을 수 있다.

조선 후기,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대동법 시행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김육(1580~1658)은 죽기 얼마 전에 이순신의 외손자인 홍우기의 부탁으로 비문(碑文)을 짓는다. 이 비문에는 "영구를 아산(牙山)으로 돌려 올 적에는 모든 백성과 선비들이 울부짖으면서 제사를 올렸는데, 천 리 길에 끊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다. 7년 전란의 와중에서 만신창이가 된 수많은 선비와 백성이, 요즘처럼 출판사나 영화사의 홍보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남해에서 충남 아산까지의 긴 운구행렬에 자발적으로 '울부짖으면서' 제사를 올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선조의 몽진에 분노해 경복궁을 불태웠던 그 백성이 왜 그렇게 이순신 장군은 추모했을까? 그것은 바로 이순신 장군이 국가 재난과 정치 부재 속에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흔들리지 않는 리더십으로 백척간두에 선 나라를 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주말이면 영화관에 웃으면서 줄을 서는 남녀노소 관객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백성이 국민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동일하다. '명량'에 대한 부화뇌동의 의미를 곰곰이 씹어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