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비스듬히 누운 남자들이 피리처럼 굵은 담뱃대 끝 쇠통을 등(燈)에 대어 불을 붙인다. 양귀비 액즙을 말리거나 달여 굳힌 고약 같은 아편이 타면서 내는 연기를 입으로 빨아들인다. 몽롱한 상태에 빠진 이들은 밥도 거른 채 아침부터 저녁까지 침대에 누워 있다. 흑백사진으로 남아 있는 19세기 광저우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 아편굴의 모습이다. 아편은 중국인의 몸과 정신을 망가뜨렸고 아편전쟁의 꼬투리가 돼 노(老)대국의 몰락을 재촉했다.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정권을 세우자마자 '마약과 전쟁'을 선포했다. 마약 사범을 '인민의 공적(公敵)'으로 규정하고 1953년까지 무려 8000만명을 처벌했다. 한동안 사라졌던 마약은 시장경제 바람을 타고 중국 사회로 다시 스며들었다. 올 4월 중국 공안부 발표에 따르면 2011년 178만명이었던 마약 중독자는 지난해 222만명, 올해 258만명으로 불어났다. 이 중 87%가 35세 이하 젊은 세대다.
▶그끄제 5일 중국 남부 광시(廣西)성 톈덩(天等)현 공안이 시내 한 노래방을 급습했다. 홀 가운데 테이블에서 생일 케이크와 함께 'K가루(케타민염산염)'가 담긴 접시가 발견됐다. 한국에서 '강남마약'이라고 하는 흥분제다. 현장에 있던 32명 중 3분의 2가 '90후(後)'라 불리는 1990년 이후 출생자였고 최연소자는 16세였다. 배고픔을 모르는 중국 청소년 세대가 마약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
▶중국 지도부는 1990년 마약 사범에 대한 처벌 규정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강화했다. 아편 1㎏ 이상이나 헤로인·필로폰 50g 이상을 제조·밀수·판매한 자에게 최고 사형까지 구형한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마약의 60~70%는 미얀마·라오스·태국 등 이른바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유입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만들어진 마약도 신장(新疆)위구르로 들어온다. 셋째 유입 통로가 북한·중국 국경이다.
▶북한은 무산·혜산 등에서 재배한 양귀비를 원료로 최상급 아편을 제조한다. 북한은 필로폰 생산국으로도 악명이 높다. 이 마약들이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다는 의혹도 있다. 몇 년 전 북한산 필로폰을 중국으로 몰래 들여오다 잡힌 한국인 3명에 대한 사형이 엊그제 중국에서 잇달아 집행됐다. 우리 정부는 사형 집행 유예와 한국 이송을 요구했으나, 중국은 영국·일본인 마약 사범을 사형한 전례를 들며 거부했다. '처형'을 밀어붙인 중국의 행동에 175년 전 영국과 전쟁을 불사하며 아편 소각을 강행했던 제국의 모습이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