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94님의 사연입니다. 여자 친구 통금 시간이 7시라서 고민인 대학생입니다. 어떻게 하죠?"
"7253님은 '나 사랑해?' 하고 물으면 남자 친구가 자꾸 말을 돌린다고 하시네요."
5일 오전 1시 MBC FM4U '푸른 밤, 종현입니다'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DJ인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 종현이 청취자들이 문자로 보내온 사연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딸과 함께 프로그램을 듣고 있던 권수길(50)씨는 "난 아무래도 사람 이름 대신 '5694님'이라고 부르는 게 어색하다"고 딸에게 말했다. 딸 연주(20)씨는 "난 어릴 때부터 이렇게 들어서인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라디오 방송에서 휴대전화 문자로 사연을 받으면서 사람 이름 대신 뒷번호를 부르는 관행이 생겼다. 젊은 층이 많이 듣는 가요 프로그램뿐 아니라 중장년층이 많이 듣는 클래식 프로그램에서도 숫자로 청취자를 소개한다. 하지만 권씨처럼 중장년층 라디오 청취자 중에는 이 관행이 어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초대 손님으로 나간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문자 사연을 소개하면서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더라고요. 죄수 번호 부르는 것처럼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PD에게 물어봤더니 '개인 정보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더군요."
15년째 KBS 1FM '재즈수첩'을 진행하는 DJ 황덕호(50)씨의 말이다. 황씨는 "재즈수첩은 녹음 방송이라서 문자 사연을 잘 받지도 않고 번호로 사람을 부르진 않는다"며 "주로 실시간으로 청취자 반응을 받을 필요가 있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많이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KBS 라디오에서 시사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한 PD는 "내부적으로도 이름 대신 번호를 부르는 게 문제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면서도 "제작 여건상 개선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이 신상을 밝히지 않으면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해야 하는데 생방송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 또 본인이 신상 공개를 원하지 않으면 번호를 부르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하지만 이 역시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몇몇 PD는 아예 자기 프로그램에서 '5678님' 대신에 '뒷번호 5678을 쓰는 분'이라는 식으로 바꿔 부르게 한다.
KBS 라디오의 한 국장급 간부는 "'뒷번호 5678을 쓰는 분'이라고 부르는 것도 DJ로서는 번거롭기 때문에 잘 퍼지진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