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드라마‘프리티 리틀 라이어스’(위)와‘오펀블랙’화면 위에 아마추어 자막 제작자들이 배포한 한글자막이 함께 재생되고 있다. 미국 드라마·영화 제작사들은 지난달 16일 국내 아마추어 자막 제작자들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집단 고소했다.

'자막 대란이 일어났습니다. 미드 지금 당장 쟁여놓으세요.'

미국 드라마를 뜻하는 '미드'의 팬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지난 29일 긴급 공지가 잇따라 올라왔다. '워너브러더스' '20세기 폭스' 같은 미국의 유명 드라마 제작사 6곳이 자신들의 드라마에 한글 자막을 만들어 유포한 국내 자막 제작자를 집단 고소하고 나섰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였다. 이들의 고소에 따라 서울 서부경찰서는 이날 김모(35)씨 등 아마추어 자막 제작자 15명을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자막을 배포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국내에서 외국 드라마의 자막을 배포한 혐의로 누군가 고소를 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드라마 자막은 2차 저작물이기 때문에 원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제작해 공유하면 불법이 된다.

고소당한 자막 제작자들은 네티즌들이 대부분 불법으로 다운로드 받은 영상에 자발적으로 한국어 자막을 넣는 일을 해왔다. 이들 덕분에 국내에 최소 수백만명 이상으로 추정되는 미드 팬들은 영어를 못하더라도 미드를 볼 수 있었다. 토익 등 전 세계 영어 시험 랭킹에서 일본과 최하위권을 다투는 한국 사회에서 미드 열풍이 불어닥친 것은 이들이 제공한 자막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자막 제작자들이 집단 고소를 당하면서 앞으로는 영어를 못하는 사람은 미드를 보기 어려워졌다. 이미 지난달 초부터 집단 고소 소식이 퍼지면서 온라인상에선 자막 배포 사이트를 폐쇄하거나 개인 자막 배포자들이 자막을 비공개로 바꾸는 일이 생겨나고 있다.

2000년대 중반부터 미국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등이 전해지면서 국내에는 '미드 폐인' '미드족'이란 신조어까지 생겨날 정도로 열풍이 불었다. 한 방송사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성인의 40% 정도가 어떤 형태로든 미드를 접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온라인 미드 사이트 회원 수만 해도 20만명을 넘는다. 국내 네티즌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비트토렌트'에서 지난해 불법 다운로드 1위를 기록한 콘텐츠도 미드 '왕좌의 게임'이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590만명이 다운받았다.

미드 보기가 일상생활이 된 미드 팬들은 당장 충격에 빠졌다. 미드는 특히 의학이나 법률 등 전문성이 있는 분야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 영어 능통자라 하더라도 해석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대학생 이보람(23)씨는 "외국 거주 경험까지 있지만 미드를 볼 때 모르는 용어가 많이 나와 자막을 본다"고 말했다. 미드 팬들은 자막 집단 고소에 맞서 각종 방안을 강구 중이다. 한 미드 팬은 "자막을 돈 받고 판 것도 아니고 언어 문제로 미드를 즐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종의 재능 기부를 한 것인데 너무한 것 아니냐"며 "아예 자막 제공 사이트를 해외로 옮기거나 IP 주소를 추적할 수 없도록 지하철 공유기나 대포폰을 이용해 자막을 올리자"고 주장했다. 한국 드라마들이 해외에서 인기 끌고 있는 점을 이용해 "한국 드라마 자막을 영어로 제공하는 사람들을 맞고소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이제 미드가 아니라 '영드(영국 드라마)'로 갈아타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저작권 침해라는 불법을 바로잡았으니 할 말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한 네티즌은 "영어를 못하면 미국 드라마를 못 보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며 "영어 실력을 키워서 보면 될 문제"라는 입장을 보였다. 또 다른 네티즌 역시 "한국이 그동안 얼마나 불법 다운로드를 해서 많이 보면 한국만 찍어서 고소를 했겠느냐"며 "이 기회에 불법으로 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적었다.

TV조선 화면 캡처

[[찬반토론] 미국 드라마 아마추어 자막 제작자, 엄격하게 처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