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18위 동부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동부제철이 채권단 관리 아래 들어가게 됐다. 당초 동부는 동부제철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을 팔아 8000억원 정도의 현금을 확보해 동부제철을 살리려 했다. 하지만 유력 인수 후보였던 포스코가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을 뺐다. 채권단은 동부에 김준기 회장 일가가 보유하고 있는 동부화재 지분(持分)을 담보로 내놓을 것을 요구했으나 동부는 동부화재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며 거절했다. 이에 따라 동부제철의 빚더미 2조6000억원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이 떠안게 됐다.

동부그룹의 64개 계열사 중 핵심은 동부제철과 동부화재다. 동부제철은 4년 연속 적자를 냈고 작년에만 1405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반면 동부화재는 작년 2700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현금 창출 능력이 있다. 동부그룹 오너가 동부화재 지분을 담보로 내놓지 않는 것은 '꼬리 자르기' 식으로 부실 계열사를 털어버리는 대신 알짜 금융 계열사만 챙기겠다는 속셈으로 보인다. 자금 위기에 빠진 동부는 작년 말에도 반도체 회사인 동부하이텍 등을 팔아 현금 3조원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채권단에서 1조원대의 자금 지원 혜택만 받아갔을 뿐 정작 계열사 매각엔 소극적이다.

동부의 빚더미를 떠안은 채권단의 손실은 결국 국민 부담으로 이어진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STX그룹 주채권 은행으로서 STX의 부실을 떠안는 바람에 작년에 13년 만에 처음으로 1조4000억원의 적자를 봤다. 동부의 주채권 은행도 산업은행이다. 동부 계열사의 회사채 등에 돈을 넣은 개인 투자자만도 1만1400여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언제 원금을 다 찾지 못하는 피해자가 될지 알 수 없다.

재벌들이 부채는 투자자나 채권단에 떠넘기고 알짜 재산만 사유화(私有化)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동양그룹은 지난해 사기성 기업 어음과 회사채를 남발해 5만명 가까운 피해자를 양산했다. LIG그룹도 2011년 부실 건설 회사를 통해 기업 어음을 대량 발행한 후 그 계열사를 법정관리에 넣어 700여명의 피해자를 만들어냈다. 정부가 오너들이 빚은 국민에게 떠안기고 알짜만 챙겨가는 짓을 끊는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들의 염치없는 행위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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