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혜 사회정책부 기자

세월호가 침몰한 지 두 달 열흘이 됐다. 그 사이 광화문 책방에 자주 갔다. 세월호 참사는 아이 키우는 엄마들을 울렸다. 이런 참사가 왜 일어났을까. 앞으론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손 닿는 곳에 지혜가 있길 바랐다.

아사히신문 주필이 일본 대지진을 8개월간 세세하게 파헤친 책, 한겨레신문 일본 특파원이 같은 사건을 바라본 책,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지난 사고들을 분석하고 '우리 재난 시스템에 허점이 많다'고 경종을 울린 책, 미국·유럽 학자들이 재난에 대해 논쟁한 책….

한 권 집으면 다른 책이 또 눈에 들어왔다. 얼추 스무 권은 산 것 같다. 밑줄 치며 읽었지만 때론 화가 나서 밀쳐두기도 했다. 여야 의원들이 처음엔 세월호 국정조사 일정조차 서로 맞추지 못해 전남 진도 팽목항에 따로 갔다는 기사를 본 뒤 특히 그랬다. 책 읽는 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다.

2007년 6~7월 영국에 물난리가 났다. 기상 전문가들이 "120년 만의 최악 집중호우"라고 했다. 그때 영국은 민관 합동 조사단을 꾸려 꼬박 1년간 조사했다. 사태가 커진 원인과 대처 과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져서 505쪽짜리 보고서를 내놨다. '앞으로 25년 뒤를 내다보고 홍수 예방책을 강화하겠다'는 게 결론이었다. 구체적인 정책이 곳곳에 빼곡했다.

2012년 미국 대선 때 수퍼 스톰 '샌디'가 불어닥쳤다. 동부 주민들 얼이 빠졌다. 뉴저지주 피해가 제일 심했다.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이 선거 일정을 미루고 현장으로 달려갔다. 공화당 소속 뉴저지 주지사와 함께 복구 현장을 누볐다. 공화당 주지사가 주민들 만날 때마다 "민주당 대통령이 정말 잘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 대통령에게 묻고 싶었다. 국가 개조는 어딜 어떻게 손대는 일인가? 밑그림이 어떻게 생겼나? 누가 그리나? 우리 일상이 어디가 얼마큼 달라져야 하는가?

현장에서 국민이 느끼는 부조리는 꼭 거대한 것이 아니다. 작아 보이는 일이 때론 더 본질적이다.

세월호 사건 초기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검은 바다에서 아이 시신을 건진 부모에게 군(軍) 헬기를 내주겠다고 했다. 막상 유가족이 다가와 "그 헬기를 어디서 타야 하느냐"고 묻자 현장 공무원이 "신청서를 받긴 했는데 누가 가지고 있는지 몰라서…. 주민번호 한 번만 다시 써달라"고 했다. 여러 관청 공무원들이 뒤섞여 앉아 일했지만 서로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관피아'를 척결하는 것보다 이 문제를 고치는 쪽이 더 어렵고 긴 싸움일 수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는 말이 있다. 비상사태일수록 현장의 디테일이 선진국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새 다른 데 더 정신을 쏟고 있다. 배가 자꾸 산으로 간다. 일본에선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대응 과정을 분(分) 단위로 쪼개서 반성하는 책이 나왔다. 우리도 그런 책이 나올까. 만에 하나 다른 재앙이 닥치면 이번과 다르게 대응할 수 있을까. 다음 총리가 누가 될지 어제 또 미궁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