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봉!' 1990년대 초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국민이 즐겨 쓴 표현이다. 당시 국내의 한 음료 광고에서 나온 최고의 유행어였다. 따봉은 포르투갈어다. '매우 좋다'는 뜻으로 원래는 '이스따 봉(Está bom)'이라고 하지만 간단하게 줄여서 '따봉(Tá bom)'이라고 한다. 따봉은 '좋다!'라는 감탄뿐만 아니라 '좋아?' 하고 물을 때도 쓴다. 혹 브라질에 가서 '따봉?' 하고 끝을 살짝 올려 말하면 브라질 사람들 또한 '따봉!' 하고 길게 화답해 줄 것이다.
외국어가 잘 통용되지 않는 브라질에서 따봉은 그 쓰임새가 무척 많다. 길을 잘 모른다면 한번 물어보라. 십중팔구 친절하게 답해준다. 가끔은 엉뚱하게 알려줘서 낭패를 보기도 하지만 그 친절함에는 두 손 두 발을 들 지경이다. 그럴 때 '고맙다, 감사하다'는 의미의 '오브리가두(Obrigado)'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저 '따봉!' 한마디만으로도 만사형통이다. 따봉은 미안하거나 괜찮으냐고 물어볼 때도 사용할 수 있다.
브라질 사람들은 서두르는 법이 별로 없다. 작년에 브라질을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어떤 브라질 사람이 내게 '빨리빨리'라고 말하는 걸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브라질 사람들은 어떤 일을 하다 잘 안 되면 '내일'이라는 의미의 '아마냥(Amanhã)'이라고 말해버린다. '내일 하면 되지, 뭐 그리 급하게 서두르느냐'는 말이다.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브라질에서 미칠 지경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은행이나 관공서, 공항에 가면 길게 줄지어 서 있는 걸 볼 수 있다. 줄 서 있는 건 우리도 마찬가지지만 그 이유나 속도가 다르다. 특별히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고객을 맞이하는 직원들이 천천히, 느긋하게 일을 하기 때문이다. 우리 같으면 짜증 낼 만한데 아무도 짜증 내지 않는다. 그저 '인내'라는 의미의 '빠시엔시아(Paciêcia)!', 즉 '뭐 어쩌겠어!'라고 말할 뿐이다. 브라질 사람들과 상대할 경우에는 이 빠시엔시아라는 말을 배워두는 게 좋다. 브라질 사람들은 약속 시각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많고, 늦어도 별문제 삼지 않는다.
어쩌겠는가? 우리에게도 코리안타임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마음에 여유를 갖는 게 여러모로 편하고 좋다.
브라질을 여행하다 보면 이런 느긋함에서 여유가, 여유에서 친절이 나온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민 온 사람이든 여행이나 사업차 들른 사람이든 누구든지 환영해주고 친절하게 대해 준다. 그 친절함은 '아미구(amigo·친구)'라는 표현에서도 묻어난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아미구라고 부르는 브라질 사람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런 편안함은 격식을 많이 차리지 않는 브라질 사람의 특성에도 기인한다. 예의를 차리는 우리로선 포르투갈어를 배울 때 '~선생님' '~씨'라는 의미의 '시뇨르(senhor)'를 이름 앞에 붙여 호칭하는 게 익숙하다. 그러나 브라질 사람들은 금방 '너' '당신'이라는 의미의 '보세(você)'라는 호칭이나 이름을 부르라고 한다. 월드컵이 개막했다. 2002년 월드컵이 온 국민에게 큰 기쁨과 희망을 안겨주었듯 이번 브라질월드컵에서도 승리의 함성과 더불어 '따봉'이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리길 빌어본다.
☞김용재는
한국외국어대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한 뒤 포르투갈의 리스본대에서 포르투갈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부산외대 포르투갈어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 한국·브라질 소사이어티(KOBRAS)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포르투갈 문학사’ ‘포르투갈·브라질의 역사문화기행(공저)’ ‘포르투갈을 만난 아프리카(공저)’ 등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