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우충원 기자] '인수분해 하는 축구선수'. 이 별명이 그의 축구를 설명한다. 아니 그의 인생을 설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조광래 전 감독이 그 주인공.

현역시절 '컴퓨터 링커'로 명성이 높던 조광래 전 감독은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부동의 미드필더다. 학창시절 시험을 통해 명문 진주고에 입학한 조광래 전 감독은 축구를 시작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인수분해'를 할 수 있다는 별명도 여기서 나온 것. 그만큼 열심히 노력했고 결국 1975년 21살의 나이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늦게 시작한 만큼 철저하게 노력했다. 그는 매일 등산을 한 뒤 등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늦게 시작해 체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주전 경쟁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현역 은퇴할 때까지 그는 매일 전력질주로 등산을 했다. 승부욕이 얼마나 강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1978년과 1986년 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따낸 조광래 전 감독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했다. 32년만에 한국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것이다. 조광래 전 감독을 비롯해 멤버가 화려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서 뛰던 차범근을 시작으로 최순호, 허정무, 박창선, 김주성 등 이름만 대면 알 선수들이다.

최고의 멤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멤버보다 더 뛰어나다 할 만 하다. 하지만 경험이 부족했다. 한국은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불가리아와 같은 A조에 편성됐고, 1무 2패로 탈락했다. 불가리아를 상대로 첫 승점을 땄고 이탈리아를 괴롭히며 강한 인상을 남겼기에 아쉬움은 두고두고 남았다.

당시에 대해 조 전 감독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1986년 멕시코 대회 땐 강팀과 경기한 경험이 없어 두려운 마음이 컸다"며 "지금 대표팀은 나이는 어려도 큰 대회 경험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축구계의 불모지였던 한국은 세계적인 팀들과 대결을 펼치지 못했다. 평가전 상대라고 하면 프로팀 정도였다. 물론 브라질과 유럽의 프로팀들은 대표팀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경험 부족이 너무나도 컸다.

조광래 전 감독은 "차범근 감독이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그러나 직접 몸으로 부딪히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부담감이 컸다. 정말 뛰어난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감도 넘쳤다. 고생을 해서 출전했기 때문에 실망도 컸다"고 전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은 단순한 대회가 아니다. 그 이후로 한국은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8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금자탑을 쌓았다. 이는 아시아 최다이자 브라질, 독일,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스페인 등과 함께 세계 6개 나라만이 일군 대기록이다.

선배인 조광래 전 감독은 이번 월드컵에 임하는 선수들에 대해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취임 후 손흥민(레버쿠젠) 구자철(마인츠) 등을 대표팀에 적극적으로 기용하면서 현 대표팀의 초석을 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디해라.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가대표라는 자존심을 갖고 임해야 한다. 내가 해줄말은 그것 뿐이다.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모두가 응원할테니 걱정말고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다"고 선전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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