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착한 연극'인 것 같다고요? 하긴, 젊었을 때라면 이런 작품은 못 썼을 겁니다."

햇볕이 쏟아지는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만난 극작가 이강백(67)이 껄껄 웃었다. 그가 희곡을 쓴 연극 '챙!'(임영웅·심재찬 연출)은 지난 8일 개막해 공연계에 잔잔한 울림을 일으키고 있다. 인터넷에는 '추억하며 아프지 않게 떠나보내는 연극' '인생도 예술도 침묵 속 큰 울림'이라는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연극 ‘챙!’에 출연한 손봉숙(왼쪽)과 한명구. 두 사람 모두 이해랑연극상 수상자다.

'챙!'은 교향악단의 심벌즈 연주자 함석진이 설악산에서 비행기 사고로 실종된 지 1년 뒤 그의 아내(손봉숙)와 지휘자(한명구)가 함석진의 삶을 이야기하는 2인극이다. 뚜렷한 기승전결이 없는데도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매우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으면서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 이 연극의 큰 미덕. "심벌즈 연주자처럼, 박자를 세면서 기다리다가 절정의 순간에 '챙!' 하고 울릴 그날이 누구에게나 온다"는 대사에 주제가 함축돼 있다.

국내 대표적인 극작가 중 한 명인 이강백은 '파수꾼'(1974) '호모 세파라투스'(1983) '오, 맙소사!'(1999) 등의 작품을 통해 권력과 인간을 끊임없이 비판해 온 작가다.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는 알레고리가 곳곳에 스며 있는 작품이 많았다. 2007년 '황색여관'에선 아예 모든 투숙객이 서로 죽이는 것으로 끝난다.

"이제 나이가 드니 이렇게 편하고 우아한 작품을 한번 해 보고 싶더군요." 사실 '챙!'은 교과서적인 작품이다. 7~8년 전 서울예대 극작과 교수로 '희곡창작실습'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자주 연주되지 않는 심벌즈라는 악기를 통해 인생을 은유하는 작품을 써 보라, 배우는 2명만 등장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좀처럼 마음에 드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함석진이라는 인물이 무대에 직접 등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관객은 그를 무척 이상적인 사람으로 생각해서 각자 머릿속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죠."

극작가 이강백은 “연극 ‘챙!’을 보러 온 심벌즈 연주자는 극장에 연락처를 남겨주면 고마움의 표시로 작가가 관람료를 지불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2월 정년퇴임한 그는 이 미완의 작품을 직접 써서 무대에 올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연출은 임영웅 선생님, 무대는 산울림소극장을 염두에 두고 쓴 겁니다." 연출가 임영웅은 연극 개요를 간략하게 들은 상태에서 "어, 이거는 한명구·손봉숙이 해야겠네"라고 했다. 중량감과 나이가 있는 배우들이 나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첫날 공연에선 아찔한 일도 있었다. 긴장한 손봉숙이 그만 대사 일부를 건너뛰었던 것. "눈앞이 캄캄해지더라고요. 그런데 역시 대단한 배우들이었습니다." 한명구가 씩 웃으며 "그런데 재미난 에피소드는 없으셨나요?"라며 대본에 없는 대사를 했고, 손봉숙이 곧바로 알아차려 빼먹은 대사로 돌아갔다. 관객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이번 작품으로 작가로서의 색깔이 바뀌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이강백은 손사래를 쳤다. "'즐거운 복희'라는 작품을 '챙!'하고 같이 썼어요. 여름에 무대에 올릴 건데 역시 까칠한 작품입니다, 하핫."

▷연극 '챙!' 6월 8일까지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월요일 공연 없음), 공연 시간 90분. (02)764-74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