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 정유진 기자] 배우 지창욱은 종영한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극본 장영철 정경순 연출 한희 이성준)의 가장 큰 수혜자로 손꼽히고는 한다. 그만큼 그가 맡았던 타환이란 캐릭터는 방송 전에는 예상하거나 기대할 수 없었던 의외의 매력을 발휘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 인기의 중심에는 쉽게 사랑할 수 없는 타환이란 캐릭터를 인간적이고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탄생시킨 배우의 재능과 노력이 있었다.
모두에게 ‘기황후’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5월의 어느 날 한 카페에서 OSEN과 만난 지창욱은 반년 가까이 자신으로 살아온 타환과의 이별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그간의 이야기를 쏟아버리고, 정리하고 나면 스스로도 많은 정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인터뷰의 끝과 동시에 정말 끝이 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놀라운 것은 드라마의 방송 전 하마터면 지창욱의 타환을 보지 못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 타환의 캐릭터는 유독 캐스팅이 잘 되지 않았던 배역이다.
“드라마 제작 초반, 원래 예정된 배우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뒤늦게 제가 합류하면서 부담도 되고 눈치도 보이고 그랬죠.(웃음) 처음 캐스팅이 될 때까지만 해도 ‘예다!’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많은 분들이 긴가민가하시면서 ‘얘가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이 하고 우려도 하고…. 또 반대하셨던 분도 많았다고 들었어요. 부담이 된 건 사실이죠. 그렇지만 타환이란 역할 자체가 너무 재밌었고 꼭 해보고 싶었어요. 타환이란 역할에만 집중하고 상황에 대해서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았어요. 처음부터 촬영은 정말 재밌었어요. 그래도 방송 나가기 전까진 제 스스로도 ‘과연 좋아해주실까’ 확신이 없었어요.”
불안함은 기우였다. 첫 등장했던 2회 방송부터 지창욱은 철없고 나약한 원나라 황태자 타환을 완벽하게 그려냈다. 기존 생각했던 틀을 깨면서도 진짜 있었을 법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보란 듯이 제 몫을 해낸 배우의 노력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다. 특히 지창욱은 방송 초반 작가에게 받았던 격려의 전화 한 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작가가 전화가 왔는데) 제가 뭔가를 잘못한 줄 알고 처음에는 촬영 중에 저쪽으로 막 뛰어가서 받았어요.(웃음) 받아보니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캐릭터를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요. ‘걱정도 되고 반대도 했다. 그런데 방송 보니 너무 고마웠다. 고마워요 창욱 씨’라고 하시는데 작가님이 이제부터 나를 믿어주시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후 타환과 ‘기황후’는 연기 욕심 많은 이 배우가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가 돼 줬다. 작가, 감독,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거기에 지창욱만의 상상력과 해석을 넣어 타환이란 캐릭터가 탄생했다.
“사실 타환은 민폐남이잖아요. 잘하는 것도 없고 여주인공한테 매일 민폐나 끼치고. 어떻게 보면 얄밉고 미워 보일 수 있는 역할이었는데 그걸 밉지 않게 표현하는 게 고민이었어요. 그게 제일 어려웠어요. 만약 타환이 미웠으면 기승냥과의 관계도 예쁘지 않았을 거고 그건 초반부에도 썩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예요. 그래서 전 그냥 타환이 순수한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몰라 순수한, 애기 같은 아이라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순수한 타환이 탄생할 수 있었던 데는 배우의 캐릭터 해석력이 큰 역할을 했다. 지창욱은 상투적이지 않은 황제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의 머릿속에 있었던 원래의 이미지들을 지우는 것부터 시작했다. 촐랑대고 용상에서 다리를 꼬기도 하는 살아 숨 쉬는 캐릭터를 만들고자 했다. 당시의 시간을 회상하는 배우의 눈빛이 반짝였다.
“어떤 역할을 맡으면 그 역할이 살아온 과정, 그 사람의 성격, 성향만 계속 생각해요. 타환이 같은 경우에도 다른 왕들을 보지 않았고 일부러 타환이 어떤 상항에 처했는지 이 인물이 어떻게 자라왔나 계속 생각했어요. 그런 식으로 하다보면 연결고리가 생기고 인물이 점차적으로 완성돼 가요.”
타환이란 배역이 지창욱에게 특별할 수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KBS 1TV ‘웃어라 동해야’의 동해 이미지를 완전히 뒤바꿀 수 있었던 점 때문이다. 주부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동해는 오늘날의 지창욱을 있게 한 중요한 배역 중 하나였다. ‘기황후’ 전까지만 해도 ‘동해’는 지창욱의 대표작 리스트의 맨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지창욱=동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 때(‘웃어라 동해’ 때)는 어딜 가도 그냥 ‘힘내’라는 말을 많이 해주셨던 것 같아요.(웃음) 그만큼 동해의 캐릭터에 대한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기황후’ 때는 연기적 부분이나 배우 지창욱으로서 해주시고 싶은 말씀을 많이 해주신 거 같아요. 너무 기분이 좋은 일이죠. 처음엔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하고요…. 칭찬 들으면 도망가고 싶고, 현장에 선배님도 많은데 부끄러웠어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듣고 신경 쓰지 않은 척 하지만 속으로는 많이 좋아요. 배우가 연기를 잘한다는 칭찬을 들으면 그것만큼 좋은 게 없는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연기가 방해 될까봐 애써 모른 척까지 했어요.(웃음)”
실제 타환 캐릭터는 드라마 방송 내내 젊은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드라마의 주 축을 이루고 있는 러브라인에서 ‘타냥커플’(타환과 승냥이 커플)을 응원하는 많은 시청자들이 있었다. 또 모성애를 자극하는 듯 한 타환의 유약하면서도 귀여운 매력, 사랑하는 여자에 대한 일편단심을 끝내 저버리지 않는 순정파의 면모 등은 여성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했다. 과연 이 배우는 인기를 실감하고 있을까?
“확실히 광고 문의가 들어온다던지 작품이 들어온다던지 그런 부분에서 조금 차이가 있어요. 그렇지만 그 전후가 그렇게 막, 이 작품으로 인해 나의 입지가 달라지고 그건 건 잘 체감을 못하겠어요. 사실, 똑같아요. ‘기황후’ 때문에 인생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요.(웃음) ‘웃어라 동해야’ 역시 잘 됐지만 저에게는 똑같았거든요. 보통 터닝 포인트라고 하죠, 그 포인트 하나로 인생이 바뀌는 거라고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다 생각해요. 저는 복권이 당첨되듯 행운이 갑자기 쏟아지길 기다리는 게 아니라 쌓아간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사실 일시적인 거라 생각해요. ‘기황후’는 끝나고, 타환도 없고 새로운 드라마 만들어져 나오잖아요. 그래도 ‘기황후’라는 드라마 제게 너무 좋은 경험, 값진 추억,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최규한 기자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