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서울가정법원에서 지인의 결혼식이 열렸다. 쿨했다. 남들이 결혼을 끝장낼 때 찾는 공간에서 혼례를 올렸으니 이보다 발랄한 액땜이 또 있을까.
우리는 삶의 시작과 끝을 가족과 함께한다. 숱한 변수가 인생을 쥐락펴락하지만 가족만큼은 아니다. 그런데 이 '가족'이 때로는 '힘', 때론 '짐'으로 다가온다. 복(福)이고, '웬수'다. 톨스토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소설 '안나 카레니나')고 썼다. 한없이 사랑하다가도 한없이 미워지는 그 이름,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은 한 덩어리의 모빌
최광현 한세대 상담대학원 교수가 쓴 '가족의 두 얼굴'(부키)은 가족 심리 안내서다. 가족으로부터 비롯된 슬픔과 아픔, 피해 의식과 트라우마를 지닌 이들을 많이 만난다는 그는 "건강하고 행복한 가족은 의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족을 변화시키려고 온통 에너지를 쏟는 일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다. "상대에게서 문제를 찾는다면 '행복한 가족'과는 점점 멀어진다. 내 지난날의 상처와 아픔을 보고 상대의 그것도 공감하고 존중해야 한다."
가족은 한 덩어리의 시스템이라면서 그는 모빌에 빗댄다. 모빌 조각 하나를 툭 건드려보자. 그 조각뿐만 아니라 모빌 전체가 흔들린다. 가족은 그런 것이다.
문제 가족 안에는 '희생양'이 있다. 아버지나 어느 한 자녀가 모든 가족 문제의 근원으로 비난받곤 한다. 그 덕에 가족이 일시적 결속을 이루지만 희생양은 평생 죄책감과 열등감을 피할 길이 없다. 부모가 자녀에게 "영웅이 돼라"면서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위임하는 것도 희생양 만들기의 불행한 패턴이다.
가족 사이에도 '삼각관계'가 있다. "네가 아니었으면 아빠(엄마)하고 벌써 헤어졌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삼각관계의 제3자가 자녀가 아니라 시어머니나 장모, 일이나 술일 수도 있다. 아이가 가족에게서 경험하는 감정은 평생 간직될 감정 채널을 만든다. 최광현 교수는 "삼각관계에 낀 자녀는 자라서 가정을 꾸렸을 때 가족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거나 가족을 떠나려는 경향이 있다"고 썼다. 가족이 짐인 것이다.
◇임계점에 다다른 '가족 피로'
몸문화연구소가 엮은 '우리는 가족일까'(은행나무)는 '가족은 꼭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열린다. 가족은 인생에 꼭 딸려 있어야 할 붙박이장일까. 나 홀로 가족, 즉 독신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 통계청 조사로는 네 집 가운데 한 집이 독신 가구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전통적 가족 모델이 붕괴하고 있는 것이다.
미혼 남녀 가운데 40%는 '결혼 꼭 해야 하나?'라고 생각한다. '3포 세대(취업·연애·결혼 포기)'라는 말처럼 그 배경에는 경제적 비용이라는 알리바이가 놓여 있다. 가족에게 지운 책임이 막중한 사회에서는 굳이 가족을 만들어 평생 죽어라고 고생만 하다 늙는 삶에 대한 거부반응이 일어날 만도 하다. 과거에는 개인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게 당연했다면, 이젠 정반대로 여길 만큼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어졌다. 이른바 '가족 피로', 황혼 이혼 등 이혼율 급증도 같은 맥락이다.
이 책은 독신, 엄마 노릇, 싱글맘, 가족법을 비롯해 가족에 대한 10가지 화두를 붙들고 있다. 일본에서는 혼자서 죽어 거둘 사람이 없는 죽음, 무연사(無緣死)가 해마다 3만2000건 넘게 발생한다. 초고령화와 저출산 개인주의, 구멍 난 사회 안전망 탓이다. 서울에서 50세가 되도록 결혼하지 않는 미혼 인구는 지난 40년 사이 7배나 늘었다. 가족 해체에도 복지 정책이나 가족제도가 핵가족 중심으로 짜여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둥지를 떠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관계
김종갑 몸문화연구소장은 "가족이 역사적으로 변화해 왔듯이 지금 거론되는 가족의 위기도 그런 변화의 자연스러운 한 단면"이라고 말한다. 현대사회에서 가족을 가족으로 만들어주는 결정적 요인은 혈연관계가 아니라 정서적 교류와 신뢰라는 것이다. 최광현 교수는 "가족 문제의 시작은 부부의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가정은 둥지를 떠날 힘을 길러주는 곳이고, 그런 관계가 가족이다.
김애란 단편소설 '달려라 아비'(창비)는 그래서 반갑다. 어머니와 단둘이 반지하 단칸방에 사는 '나'는 만삭의 어머니를 버려둔 채 집을 나간 아버지를 증오하지 않는다. 여기에 없었던 아버지를 '어딘가를 향해 늘 뜀박질하는 모습'으로 상상해온 이 딸은 미국에서 영어로 날아온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곤 "아버지가 평생 우리한테 미안해하면서 살았대"라는 거짓말로 어머니를 위로한다. 가족에게 상처받은 자신을 긍정하는 쿨함이 어쩌면 희망이다.
[고령화 시대의 가족] 알츠하이머병 전문가의 조언
노인성 치매의 대표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은 한 사람이 평생 쌓아 놓은 기억을 무너뜨리고 그의 정체성을 갉아먹는다. 언어와 이성, 기억과 판단력을 앗아간다. 80세 이상은 10명 중 4명이 발병하는데, 환자 가족은 부모와 자녀,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를 다시 정의해야 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알츠하이머병 가족에게 다가가기'(조앤 코스테 지음·부키)는 이 병에 걸린 남편을 간호하면서 전문가가 된 저자의 경험과 조언으로 속을 채웠다. 환경을 바꿔라, 남아 있는 능력에 집중하라, 환자의 세계에 살아라 등 요긴한 5원칙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