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깍쟁이'라는 말이 있지만 서울서도 옛날엔 이웃 간 정(情)이 요즘 같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시가 낸 '서울 토박이의 사대문 안 기억'이라는 책을 보면 이웃 사이 푸근한 정경이 그득하다. 여든 즈음의 서울 토박이 열여섯 명이 어린 시절 보고 겪은 일을 구술(口述)한 것을 받아 적은 책이다. 그때는 집마다 대문 열어놓고 사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다고 한다.

▶형편 안 좋은 이웃이 쌀을 꾸러 오는 일도 잦았다. 그러면 어머니는 마루에 나가보지도 않고 "그래, 퍼 가" 했다. 아이들이 "얼마큼 퍼 가는지 안 봐도 돼요?" 여쭈면 어머니는 "오죽하면 쌀을 꾸러 왔겠나"라고만 했다. 가을이면 고사를 안 지내는 집에서도 시루떡을 했다. 이 집 저 집에서 보내오는 떡을 받아먹기만 하는 게 미안했던 것이다. 아기가 돌을 맞은 집에서 떡을 돌리면 조그만 실꾸리라도 답례로 쥐여 보냈다. 김장을 하면 으레 양념 채와 배춧속을 이웃에 돌렸다.

▶기껏해야 50~60년 전 일인데 까마득한 옛날 얘기를 듣는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겐 더할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가운데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에 사는 사람이 63%에 이른다. 그러면서 '이웃'이라는 정겨운 말이 사람들 입에서 사라지고 있다. 작년 어느 조사에서 600명에게 "위층과 아래층, 같은 층의 이웃 얼굴을 알고 있나"고 물었더니 '단 한 곳도 얼굴 아는 집이 없다'는 대답이 35.5%나 됐다. '한 곳만 알고 있다'가 26.3%, '세 곳 모두 알고 있다'는 9.5%에 지나지 않았다.

▶어제 조선일보 사회면에 '이사 떡'이 천덕꾸러기가 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새로 이사 들어와 이웃에 떡을 돌리면 반갑다는 인사 받기는커녕 문전박대당하기 일쑤라고 한다. 어떤 집은 벨 소리에 아이가 깼다고 화를 내며 "문 앞에 두고 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전세를 얻어 이사 가 떡을 돌리자 "자기 집도 아닌데 무슨 떡을 돌려. 별일이야!"라며 핀잔 준 경우도 있었다. 이러다 보니 이사 떡을 돌리는 풍습도 사라지고 있다. 어느 아파트엔 지난해 일흔 가구가 이사 왔는데 떡 돌린 집이 두 가구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이웃 간에 층간 소음, 주차, 쓰레기 버리기, 애완동물 기르기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을 만도 하다. 속담에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고 했다. 옛날엔 귀한 음식이었던 떡을 주고받으며 이웃 사이에 인정(人情)을 나누던 미풍(美風)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