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김승욱 옮김|알마|144쪽|1만1000원
이 강건한 무신론자는 죽음 앞에서 끝내 당당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많은 사람들이 타의반 자의반으로 종교에 귀의하는 경우와는 달랐다. "나는 적어도 어둠과 맞닥뜨려 '안녕' 하고 인사를 건넬 때까지는 종교적 망상에 맞서 논박하는 글을 계속 쓸 것"이라고 선언한 그는, 암(癌) 말기, 그 지옥불 같은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나를 위한) 헛된 기도로 귀머거리 천국을 귀찮게 하지 말라"고 비웃었다.
'신은 위대하지 않다'의 저자로,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이 시대 대표 무신론자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히친스(Hitchens·1949~2011·사진)가 식도암에 맞서 싸우며 써내려간 투병기다. 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삼류 감독이 만든 고문 포르노 영화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성녀(聖女)로 추앙받는 마더 테레사가 재정을 절약하기 위해 병자들 고통을 방관했다고 공격한 저서 '자비를 팔다'로 전 세계 크리스천들의 공적이 됐던 인물. 그 때문에 암 판명 직후 광신자들의 저주에 가까운 공격을 받았다. '신성 모독을 할 때 사용했던 부위(목구멍)에 암이 생긴 것이 그저 우연의 일치일까?'
그러나 '이성의 전사' 히친스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병상에서조차 신에 대한 공격을 이어간다. "신에게 은총을 내려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이야말로 신성 모독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그는, "기도의 대가로 헌금을 받아 화려하게 이윤을 내지 못했다면 오늘날의 많은 예배당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질타한다.
이 맷집 센 무신론자의 기세가 한풀 꺾인 것은 암으로 목소리를 잃게 되면서다. '수사법(레토릭)의 최고 권투선수' '유머 넘치는 독설가'로 세간의 인기를 누렸던 히친스는 "말하는 능력의 상실은 갑작스러운 성불능과 비슷하다"며 실의에 빠진다. "음악을 만들어내고, 사랑을 이끌어내고, 폭도들을 열정으로 이끄는 공명의 떨림…. 이 능력을 잃는 것은 작지 않은 죽음이다."
어쩌면 히친스는 신에 대한 부정(否定)이 아니라 '말의 자유(freedom of speech)'에 천착한 것인지도 모른다. "종교를 없애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 도킨스와 선을 그었던 히친스는, 금기 없는 대화와 치열한 논쟁을 통해 인간 사회를 억압하는 '우상'들을 파괴하는 것이 비평의 진정한 목표라고 단언했다.
손마저 말을 듣지 않기 시작했을 때 짤막하게 남긴 미완성 메모들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들로 가득하다. '우리가 숨이 차다는 말을 얼마나 무심하게 사용하는지 생각하면 우습다' '코털이 사라졌다. 콧물이 줄줄 흐른다' '죽음은 우리가 거울로 뭔가를 보기 위해 거울 뒤에 발라야 하는 어두운 물질과 같다' '두려움이 미신으로 이어진다'…. 냉철하고 객관적인 말만 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그러나 누구보다 인간에 대한 연민이 깊었던 한 휴머니스트의 독백이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