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수학|EBS '문명과 수학' 제작팀 지음|민음인|241쪽|1만5000원
사람은 본능적으로 수학을 한다. 보기만 하면 개수를 세고 양을 가늠하며 높이나 넓이를 궁금해한다. 문명을 세운 기둥 가운데 하나가 수학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피자 한 판 여덟 조각을 셋이 공평하게 나눠 먹는 법부터 아이가 좋아하는 팝업북, 월드컵 축구공, 아름다운 화음(和音), 어지러운 주식시장, 병원의 CT 촬영, 교통카드도 밑바탕에 수(數)가 있다.
수학과 담쌓은 사람도 '피타고라스의 정리'는 안다. 직각삼각형에서 직각을 낀 두 변을 a, b라 하고 빗변을 c라 하면 a²+b²=c². 고교 시절 집합과 명제, 인수분해까지 '열공'하다가 미적분, 확률과 통계에 이르러 "수학 포기했다"는 친구가 적지 않았다. 이 책을 먼저 접했다면 수학이 야멸차고 뻑뻑한 과목으로 남지 않았을 텐데.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에서도 '3, 4, 5'처럼 직각삼각형을 이루는 숫자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하필 피타고라스 이름이 붙었을까. 대장간을 지나던 피타고라스에게 평소와 달리 듣기 좋은 소리가 들렸다. 불의 온도, 쇠의 재질이 아니라 비밀은 '길이'에 있었다. 3과 2라는 숫자, 즉 도와 솔의 길이였다. 3분의 2 비율은 어떤 것이든 화음을 이룬다. 그는 계속 조화로운 소리를 찾았고 '피타고라스 7음계'는 그렇게 탄생했다.
피타고라스는 물이나 불, 흙 같은 물질에서 세상의 원리를 찾았던 그리스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세상을 구성하는 보이지 않는 수, 즉 '정신의 세계'로 사람들을 이끈 것이다. 수학은 법칙을 발견한 그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무방하다. "만물의 원리는 수이고, 만물은 수를 모방한다."
더 옛날 수학은 포식자로부터 양떼를 보호하려는 '거리 재기'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주변의 사물을 나누게 됐다. 하늘에 뜬 것과 땅에 있는 것, 죽은 것과 살아 있는 것,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인류는 마침내 항아리에 돌멩이를 넣거나 나무 막대 또는 짐승 뼈에 빗금을 새겨 양의 가치를 보존하기 시작했다. 라틴어 '칼큘러스(Calculus·계산)'는 '돌멩이'를 뜻하는 칼쿨리(Calculi)에서 왔다.
이집트에서 수학은 제왕의 학문이었다. 피라미드 높이를 정하고, 노동자에게 급료를 나눠주고, 홍수로 지워진 토지 경계선을 다시 긋는 데 수학이 필요했다. '0'은 약 1200년 전 인도에서 발견됐다. 인도 사람들에겐 큰 수에 대한 그칠 줄 모르는 갈망이 있었다. 가장 작은 '0'을 만들고서야 큰 수를 표현하게 된 것이다. 수학이 움직이는 세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미분(微分)부터다. 데카르트는 밤하늘 별을 보며 x축과 y축을 그려 좌표를 매겼고, 17세기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더 나아가 미적분을 발견했다.
삼각형 내각들의 합은 평면에서 180도지만 지구본 위에 있는 삼각형이라면 180도보다 크고 솥뚜껑 안쪽에 그린 삼각형은 180도보다 작아진다. 이 '휘어진 공간'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1년 EBS로 방송된 다큐멘터리를 옮긴 이 책은 수학의 역사와 발상의 전환을 흥미롭게 추적한다. 방송에서 다루지 않은 이슬람 수학이 추가됐다.
올해는 동계올림픽과 월드컵만 열리는 게 아니다. 오는 8월 서울이 개최하는 세계수학자대회(ICM)에서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Fields Medal·상금 100만달러)이 발표된다. 수학은 인류가 자연현상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언어였다. 학교 울타리 밖으로 나오면 수학이 재밌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이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박경미 홍익대 교수가 쓴 ‘수학 콘서트 플러스’(동아시아)를 추천한다. 영화 ‘다빈치 코드’, 소설 ‘해리포터’ 속 암호 해독에 숨겨진 수학을 일러준다. 음악·미술·야구·대칭으로도 수학을 이야기한다.
수학자 루돌프 타쉬너의 신간 ‘수학과 세계’(알마)도 읽을 만하다. 하늘에서 벌어지는 현상에 신의 개입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던 라플라스, 재물 따위를 셈하는 데 수를 사용할 수 없다며 상인과 자본가를 경멸한 피타고라스 등 수학의 눈으로 세계를 들여다본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