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게 얇게 가볍게.' 스마트폰 시대에 등장한 종이책의 생존 실험이다.

은행나무 출판사가 펴낸 '마이크로 인문학' 시리즈 1권은 107×177㎜ 판형에 160쪽, 136g이다. 어른 손만 하다. 지난달 나온 경영서 '나는 세상을 브랜드로 이해한다'(유니타스브랜드)도 107×170㎜다. 이번에 번역 출간된 프랑스 철학자 미셸 세르의 인문서 '엄지세대, 두 개의 뇌로 만들 미래'(갈라파고스)도 128×196㎜로 시집보다 작다. 은행나무 편집자는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듯이 한 호흡으로 읽히면서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 스마트폰을 닮아간다

문화체육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평일 성인의 독서 시간은 23.5분, 스마트폰 사용 시간은 96분이다. 그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작고 얇은 책'은 1000쪽(무게 1㎏)이 넘는 이른바 '벽돌책'과는 정반대 방향이지만 생존 실험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요즘 소설 대부분은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무선 148×210㎜)에 비해 크기가 작은 양장본(127×187㎜)으로 나온다. 2013년 유일한 밀리언셀러 '정글만리'(조정래, 해냄)는 100×150㎜짜리 핸디북을 사은품으로 나눠줬다.

서점에는 100×135㎜ 판형에 3000원밖에 안 되는 '세계문학 미니북'(더클래식)도 있다. 한 페이지에 실리는 원고량도 1990년대 200자 원고지 4매에서 이젠 3.2매로 줄었다. 오영나 문학동네 부장은 "책이 작아져 휴대하기 편하고 여백이 많아 읽는 속도도 빨라지지만 '왜 이렇게 벙벙하게 만들었느냐'는 항의도 들어온다"고 했다.

출판평론가 표정훈 한양대 교수는 스마트폰은 커지고 책은 작아지는 현상에 주목한다. 그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지 않고 빨리 넘어가는 스마트폰 텍스트의 크기와 형태에 익숙해질수록 종이책도 그것을 닮아갈 것"이라며 "앞으로 '마이크로 인문학'처럼 작은 책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독자는 제한적, 결국엔 품질

외형이 전부는 아니다. 일본에서 성공한 문고판(文庫判·보통 105×148㎜)은 한국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시장 규모가 너무 작고 '있어 보이는 책'이 팔리는 독서 문화 때문이다. 베트남전을 다룬 '최고의 인재들'을 비롯해 벽돌책을 여럿 펴낸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한병철의 '피로사회',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처럼 얇은 인문서가 대중적 지지를 받은 사례도 있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 쉬운 벽돌책이 아직은 더 안전하다"고 말했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작고 얇은 책'은 지식 소장욕이 약한 젊은 세대, 읽기는 해야겠는데 싸고 휴대하기 좋은 책을 바라는 독자에게 다가갈 것"이라고 했다.

종이책은 스마트폰 시대라는 새로운 환경에 툭 던져진 셈이다. 진화론은 "살아남는 것은 힘이 세거나 영리한 동물이 아니라 환경에 잘 적응한 동물"이라고 말하지만, 작고 얇은 책과 벽돌책 중 어느 쪽이 더 오래 살아남을지 예측하기는 이르다. 작고 얇은 인문서는 '패스트푸드 인문학'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표정훈 교수는 "넘쳐나는 온라인 무료 지식 정보와 얼마나 차별화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면서 "주제에 대해 쉽고 짧게, 그렇다고 얕지 않게 담는 책이 생존에 유리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