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주의자적 성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 작품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를 보는 건 악몽 같을지 모릅니다. 엄청난 돈을 벌고 숱한 여자를 품에 안으며 쾌락에 몸을 던졌던 청년사업가 조단 벨포트(레오나도 디카프리오)의 상승과 추락을 담은 화면들은 한 마디로 난잡함의 극치입니다. 섹스와 마약과 돈 다발이 상영시간 내내 스크린에서 뒤엉킵니다.
조단 벨포트는 실존 인물입니다. 청년 시절 그는 범죄자를 꿈꾼 게 아니라 최고의 성공을 이루고 싶었을 뿐입니다. 24살에 월 스트리트 증권회사 인턴을 시작으로 증권계에 뛰어든 조단은 화려한 말솜씨, 비상한 두뇌와 빼어난 외모로 승승장구합니다. 욕심이 욕심을 부르면서 돈벌이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됩니다. 주가 조작까지 서슴지 않습니다. 월스트리트 최고의 억만장자가 되고, 술과 마약과 여자에 돈을 쏟아 붓습니다.
미용사인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던 꿈은 어디로 가고, 조단은 금발 미녀 나오미(마고 로비)를 새 아내로 맞습니다. 대저택에선 거의 매일같이 섹스와 마약이 난무하는 환락의 파티를 엽니다. 그리고 야망의 계단을 줄기차게 올라가던 그에게 FBI의 수사망이 좁혀 옵니다.
욕망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인간 쓰레기를 보여주려니 영화가 어지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등장하는 욕설 횟수부터 엄청납니다. 상소리란 상소리들은 총출동한 듯합니다. 대표격인'fuck'은 끊임없이 관객들 귓전에 울립니다.미국의 연예 전문지 '버라이어티'가 세어 봤더니 'fuck'이란 말이 무려 506번 나왔다고 합니다. 약 20초마다 한 번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이 fuck 이란 말을 쓴 영화'로 기록되게 됐다고 합니다. 대부분 야비한 성적 욕설이라기보다는 우리말 '제기랄' 정도의 추임새에 가깝게 쓰이기는 하지만, 정말 많이 나옵니다. 조단이 반 미치광이처럼 흥분하며 사원들 앞에서서 애정을 표현할 때도 입에선 'I fucking love you!'가 튀어 나옵니다.디카프리오의 반항아적 매력에 반했던 여성팬들 중엔 폐인처럼 휘청거리는 그의 모습에서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섹스와 마약 장면도 매우 잦습니다. 포르노를 연상시키는 노골적 성행위 장면들이 20번 이상 나옵니다. 마약은 시도 때도 없이 들여마십니다. 점심을 먹는 식당에서도 마약을 합니다. 증권 회사에서 조단의 상사인 마크 한나(매튜 맥커너히)가 갓 입사한 조단에게 조언이랍시고 이런 엉뚱한 소리를 지껄입니다. "월 스트리트의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살아 남으려면 말야, 마약은 필수야. 그리고 자위 행위도 자주 하라구." .
이 영화에서 섹스와 마약은 은밀한 곳에서만 하는게 아닙니다. 사무실에서 마약하고 여직원과 섹스하고, 회사 동료들끼리 코카인을 흡입합니다. 사무실이 광란의 파티장이 됩니다. 마약으로 몸이 망가진 조단이 어느날 동료와 마약을 너무 많이 먹고 뇌성마미 장애인처럼 혀도 제대로 못 놀리고 몸도 못 가누면서도 비자금을 지키려고 동료와 엎치락 뒤치락 몸싸움하는 장면은 극중 디카프리오의 연기 중 가장 기억나는 대목입니다.요즘말로 '난잡함의 끝판왕'쯤 된다고나 할까요.
성(性)과 마약은 할리우드 범죄 영화에서 자주 봤으니 그리 낯선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뒷골목 깡패나 사회적 낙오자들이 아니라 드레스 셔츠에 넥타이 맨 엘리트들의 일탈이어서 느낌이 다릅니다. 이 영화에서 특별한 건 그런 '19금'장면들의 강도도 높지만 무척 양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집요하도록 반복적으로 섹스와 마약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상영 시간이 2시간 59분, 딱 1분 모자라는 3시간입니다. 그 오랜 시간 내내 육체와 달러 지폐와 흰 마약 가루가 뒤엉키는 느낌입니다. 그나마 코믹 터치를 하고 있어 충격을 완화시켜 주기는 하지만, 보는 사람 입이 벌어지게 합니다. 관객은 탐닉의 소용돌이를 그냥 지켜보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수렁 속에 반쯤 빠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마약 소굴을 구경하다가 마약 가루 부스러기를 약간 들여 마신 기분이 납니다.
욕망의 지옥도를 집요하게 펼쳐낸 감독은 결국 관객들에게 별난 삶에 관해 일종의 백일몽을 잠깐 꾸게 만들려고 한 듯합니다. 그런 대리 체험을 통해 관객은 끝없는 탐닉이란 사람 할 일이 못 된다는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조단이 도중에 적당히 손해 보고 큰 파멸에서 비켜갈 수도 있었지만 '돈 중독'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질주를 계속하는 모습은 중독이라는것의 비극성을 몸서리치게 깨닫게도 합니다.
하지만, 거장 스콜세지가 누구나 다 아는, '바르게 살자'는 교훈이나 주려고 3시간을 쓰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일상과 완전히 동떨어진 미국 최고 상류층 퇴폐적 삶의 대리 체험을 안기면서 여러 복잡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 영화의 알맹이라고 봅니다. 캐비어를 먹고 거품목욕을 하며 헬기가 실린 자가용 호화 요트로 유럽 각국을 다니고, 궁궐 같은 저택에서 수십 명의 미녀들과 매일 먹고 마시는 파티를 벌이는 조단의 모습은 혐오의 대상인 동시에 선망의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파멸할 때 파멸하더라도 저런 인생 최고의 삶을 나도 한 순간만이라도 살아 봤으면' 하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게다가 올해 골든 글로브 남우 주연상을 수상한 디카프리오의 매력적 연기는 인간쓰레기인데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그 어느 쪽을 생각하든 그건 관객의 자유일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는 영화가 아니면 상상하기도 쉽지 않은 극단적인 인간 삶의 모습을 우리 코 앞에 너무나 진하게 펼쳐낸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