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가 기무치를 이겼습니다." 뉴스를 전하는 앵커는 흥분을 하고 있었다. 홍수환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4전5기의 승리를 거두었을 때에 딱 이랬다. 김치가 세계요리대회에 나가 결승에서 기무치를 상대로 극적인 역전승이라도 거머쥔 것인가 싶었다. 이어지는 멘트는 "김치가 드디어 유네스코 무형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될 예정입니다"였다.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 우리끼리 축하하면 될 일에 괜히 기무치를 끌어들여 흥분을 유도하였던 것이다. 한국의 김치에 비하면 그때 일본은 더 경사스러운 소식을 들었다고 할 수 있다. 와쇼쿠(和食), 즉 일본 음식 전체가 유네스코 무형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일을 두고 일본에서 "일식이 한식을 이겼습니다"라고 기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물론 "안타깝게도 기무치가 김치에 졌습니다" 같은 것도 없었다.
"김치가 기무치를 이겼다"는 말은 1990년대에 생겼다. 그 무렵 김치는 일본의 일상 음식으로 정착하고 있었다. 일본의 쓰케모노 업자들도 김치를 본격적으로 만들어 팔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일본인의 입맛에 맞추어 젓갈을 빼고 고춧가루와 마늘의 양을 줄여 들척지근한 맛이 나게 하였다. 한국의 언론은 일본에 김치 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일본식 김치에 비해 한국식 김치가 더 인기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2001년에 김치의 국제식품규격(CODEX)이 정해졌다. 이 규격을 정하자고 먼저 나선 것은 일본이었는데, 그 명칭을 그들의 발음대로 'Kimuchi'라 하였고 여기에 한국이 대응을 하면서 'Kimchi'라 하여야 한다고 주장을 하여 결국 'Kimchi'로 결정되었다. 김치의 발상지가 한국이니 당연한 일이다. 이 소식에 한국의 언론들은 '김치가 기무치를 이겼다'는 제목을 달았다. 김치의 규격에 젖산, 초산, 구연산 등 첨가물 허용 조항을 넣음으로써 '순수 자연 발효식품'인 김치의 전통적 가치가 훼손된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름만이라도 지킨 것을 두고 용하다고 하여야 하는지 그때에 나는 참으로 찜찜하였다.
어떻든 국제식품규격에 의하면 김치의 국제적 명칭은 'Kimchi'이다. 그러나 일본에서 팔리는 김치의 포장지에는 'Kimchi'라고 쓰여 있지 않다. 내국인끼리 사고파는 시장에서 굳이 영어를 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대부분 'キムチ'라고 인쇄되어 있다. 'キムチ'의 발음은 '기무치'이다. 'Kimchi'라 써놓는다 하여도 일본인은 '기무치'라고 발음할 수밖에 없다. 일본인은 받침의 발음을 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치를 가져다 자신의 음식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기무치'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발음이 그리될 뿐이다. 실제로 김치를 두고 일본 음식이라 여기는 일본인은 거의 없다. 만약 그런 일본인이 있다면 일본 내부에서도 무지한 극우민족주의자로 취급당할 것이다. 일본 업체가 제조하는 김치의 포장지도 한국적 냄새를 풍기려고 용을 쓴다. '일본 전통 김치' 같은 표기를 나는 아직 보지 못하였고, 만약 그런 김치가 나온다 하여도 일본의 소비자는 시큰둥할 것이다.
입장을 바꾸어 단무지를 생각해보자. 단무지는 분명하게 일본에서 우리 땅에 건너온 음식이다. 단무지는 일본어로 '�庵'이라 쓴다. 그 발음은 '다쿠앙'이다. 광복 이후 국어 순화운동으로 단무지라는 말을 만들어 쓰고 있다. 조리법도 바꾸었다. 일본에서는 무를 말려서 쌀겨에 박는데 한국에서는 생무 그대로를 소금과 식초, 설탕을 섞은 물에 담근다. 그래서 맛과 모양새가 퍽 달라졌다. 한국의 김치가 일본으로 건너가 'キムチ'로 바뀌었듯이 일본의 '�庵'이 한국으로 건너와 단무지로 바뀐 것이다. 한국의 단무지를 두고 일본에서 다쿠앙이라 부르라 하고 그 제조법에 시비를 붙이고 있는가. 만약에 그런다 하면 우리 기분은 또 어떨까.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 심중이 복잡하였다. "이거 친일 아냐"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겠다 싶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이 제국이었을 때에 행한 그 모든 악행을 저주한다. 현재 일본의 일부 정치인들이 획책하는 군국주의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다. 내 생각과 입장이 그러하고 김치니 단무지니 하는 음식 문화의 일을 글로 쓰고 있을 뿐인데도 친일 논란을 걱정해야 하는 이 불편한 현실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한국에서는 특별나게도 음식에 민족적 감정을 갖다 붙이기만 하면 무조건 호응을 얻는다. 그러니 애국자 되기는 너무너무 쉽다. 한국의 여러 음식 중에 김치가 으뜸의 애국 코드를 지니고 있는 것은 강렬한 민족감정 자극제인 일본에서도 이 김치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김치는 한민족의 위대한 발명품이며 이를 세계인의 식탁에 올려야 한다고 말하기만 하면 애국자가 되는데, 여기에다 일본의 '기무치'에 대해 한 방의 언사를 던져주면 극상의 애국자로 폼을 잡을 수가 있다. 이 '김치애국팔이'에 정치꾼이 들러붙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이라고 다르지 않다. 다들 김치애국팔이에 열중하니 국민도 그런 줄 안다. 그러면서 막상 한국의 김치가 망가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특히 중국산 김치가 외식업체 김치 시장의 90%를 점하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서는 아무 대책이 없다.
한국인이 식당에서 열에 아홉 번씩이나 중국산 김치를 먹게 된 것이 그놈의 김치애국팔이 때문이기도 하다. 김치애국팔이들이 집중하였던 것은 김치산업의 수치적 성과였다. 산업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단일의 김치가 필요하였다. 그래서 배추김치만 줄창 밀었다. 원래 배추김치는 겨울에 먹는 김치이다. 11월 들어 배추를 수확하고 이것으로 김치를 담가 이듬해 봄까지 먹었다. 이른 봄이면 불결구배추인 봄동으로 김치를 담그고 이어 어린 갓이 나오고 미나리·얼갈이 등으로 김치를 담갔다. 여름이면 열무가 연하고 맛있다. 오이와 가지 등의 열매채소로도 김치를 담갔다. 2010년 늦여름 배추 값 폭등 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배추 비싸면 양배추김치 먹지" 하였다가 욕을 먹었었는데, 그 당시 양배추 가격도 비쌌던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일 뿐이지 그 계절에 맞는 김치인 것은 맞는다. 양념 약하게 한 양배추김치는 시원한 맛이 있어 늦여름 식탁에 잘 어울린다. 가을이면 총각김치·고들빼기김치·콩잎김치·깻잎김치 등등이 있고, 겨울에 들면 비로소 배추김치와 동치미 등등을 먹는다. 김치애국팔이들이 배추김치가 김치의 전부인 듯이 떠들어대니 사계절 배추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졌다. 하우스에서 봄배추를, 고랭지에서 여름과 가을의 배추를 거두어 1년 내내 배추김치를 먹는 일이 일상화되었다. 그러면서 철철이 달리 먹던, 300여 가지나 된다는 계절김치는 사라졌다.
국내 김치 시장이 배추김치 한 종류로 편성이 되어 그 규모를 키우니 중국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배추를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는 넓은 땅과 저렴한 인건비로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에 배추김치만 김치인 듯이 밀지 않았다면, 300여종은 아니더라도 30여종이라도 계절별로 다양한 김치를 먹는다면 지금처럼 중국이 한국 김치 시장을 점령할 수 있었을까?
김치는 김치이다. 김치애국팔이는 제발 그만두시라. 맛있는 김치 좀 먹고 살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