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흉악범의 얼굴을 공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범죄자의 인권보다 공공의 안전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입니다.
을 저지른 전과 11범 서진환(44)이 그랬습니다. 작년 8월 7일 오전, 야동(음란동영상)을 보다가 밤을 새운 그는 비아그라 2알을 까먹고 길거리에 나섭니다. 주머니에 길이 30cm의 흉기를 쑤셔 넣은 채였습니다. 왼쪽 발목에 찬 전자발찌는 까맣게 잊었습니다.
어슬렁대던 그의 눈에 유치원 통학버스에 자녀를 태우고 돌아가던 A씨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때가 오전 9시 20분쯤. 취재수첩에 적힌 이후 2시간의 범죄내용은 낱낱이 쓸 수 어려울 정도로 잔인합니다. 서진환은 이빨과 맨주먹, 흉기, 공사용 테이프 등으로 피해자를 유린했습니다. "아저씨, 살려주세요." 문 두드리는 소리에 A씨가 현관으로 도망가자 서진환은 뒤에서 급소 4군데를 흉기로 찔렀습니다.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의 신발이 선혈로 다 젖었습니다.
◇"사촌 동생 정도라면 강간이 가능"세상을 놀라게 한 惡魔性
"여동생까지는 어렵겠지만, 사촌 동생이나 동네 사람 정도라면 강간이 가능하다."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악마성(惡魔性)에 세상은 놀랐습니다.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뻔뻔했다"라고 경찰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그는 여경을 바라보며 "사회에서 보는 마지막 여자인 너와 (성관계)를 한번 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권’을 자주 거론했습니다. 자신이 왼쪽 발목에 찬 전자발찌가 비인권적·비인간적이라는 주장입니다. 초상권에 대한 감수성도 예민해 경찰에게 “언론이 얼마만큼 내 신상을 알고 있느냐. 혹시 얼굴이 공개됐느냐”면서 수시로 물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컴퓨터 사진을 찍어온 경찰에게는 “너를 고발하겠다”면서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습니다. 현장 검증을 지켜보던 숨진 이씨의 유가족들은 “사람을 그렇게 죽여 놓고 자기 얼굴이 세상에 알려지는 게 싫다는 저놈은 악귀”라며 절규했습니다.
재판과정에서 그는 보통사람이라면 담을 수 없는 변명까지 늘어놨습니다. “많이 겁탈해 봤지만 그렇게 반항하는 여자는 처음”이라며 피해자가 잘못했다고 했습니다.
전과 11범인 그는 여러 재판에서 걸핏하면 ‘주취(酒醉)로 인한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항소했습니다. 이번에도 우발적인 범죄라고 주장하는 그에게 검찰이 “주머니에 쑤셔 넣은 흉기는 과일을 깎아 먹기 위해서 챙긴 거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항소했고 “감형해준다면 종교에 귀의해 속죄하겠다”고 형을 깎아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서진환은 어떻게 악마가 됐나
그는 심리분석 과정에서 "나는 이제 악마가 되어 바뀔 수가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지능검사 결과 그의 IQ는 103이지만, 정서공감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괴물'로 분석됐습니다. 가정폭력과 유년기의 방치로 인해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했습니다. 또 과도한 성적 욕구와 충동성, 여성을 욕구해소의 도구로 여기는 특성도 나타났습니다.
서진환은 1969년 12월 전남 구례의 한 농가에서 10남매 가운데 여섯째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목욕탕 보일러공, 막노동을 전전했는데 음주와 도박에 절어 살았습니다. 풀빵장사를 하는 어머니는 자녀를 제대로 돌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의 성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생활기록부에는 “정서가 불안하고, 차림과 행동이 불결하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곧잘 싫증을 낸다”고 적혀 있습니다. 수사기관에서 한 진술에 따르면 그는 어릴 때 옆집 여자애를 집으로 데려와 강간하려고 했는데, 이것이 첫 범죄로 추정됩니다.
중학교부터는 비행(非行)이 본격 시작됐습니다. 또래들과 동네 근처의 2살 연상 여성과 처음 성관계를 가졌고, 중3(1986년)때에는 남의 집에서 돈을 훔치고 경찰서 등에 들락거립니다. 가출이 잦았지만 아무도 그를 혼내지 않았습니다.
“용모가 단정하지 못하고, 규칙을 지키지 못함.” 그의 중학교 생활기록부에 적힌 내용입니다. 중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상경한 그는 봉제공장에서 일하면서 매월 10차례 이상 사창가를 출입했습니다. 이때가 열일곱이었습니다.
이후 친구를 따라 일시적으로 부산에 내려가 주방용기 공장에서 일하하면 주말마다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데 열을 올렸습니다. 패싸움과 음주, 섹스를 즐기던 그는 입대 후 선배의 아내를 성폭행하면서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이후 인생궤적은 불분명합니다. 도합 5차례에 걸쳐 18년형의 징역형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출소해도 몇 달 뒤면 어김없이 사고를 쳤습니다. 정상적인 연애 기록도 있습니다. 성폭행 범죄로 징역 5년을 살고, 32세에 출소한 그는 10살 연상의 이혼녀와 1년5개월 정도 사귀었습니다.
그러나 이 기간 다시 성폭행을 저질러 징역 7년을 선고받자, 이 여성과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이때 같이 교도소 생활을 했던 박모씨는 “서진환은 교도소에 있을 때 매일 같이 동료와 싸웠고, 2번 자살시도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서진환은 중곡동 주부살해 사건을 저지른 이유에 대해 “항상 머리에 성적인 생각이 가득 차 있다”며 “여성을 성폭행해 안 잡히면 좋고, 잡혀도 교도소 들어가 살면 된다는 생각이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평생 범죄의 길을 가는 ‘6%의 괴물들’
범죄전문가들은 평생 범죄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 흉악범을 전체 범죄자의 6%로 봅니다. 스스로도 “감옥을 나가면 재범(再犯)을 저지를 것 같다” “내 안에는 욕망의 괴물이 있다”고 말하는 저들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부 범죄학자들은 누범자에 대한 격리기간을 늘리는 게 능사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재소자나 출소자에 대한 재취업 교육·재활 훈련 등을 통한 교화(敎化)만이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라는 겁니다.
한 법학대학원 교수는 “단순히 가둬놓는 건 의미가 없고, 교육과 치료가 병행돼야 한다”면서 “수용단계에서 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가능한 재사회화의 성공가능성을 높이도록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정부가 범죄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사전에 관리·감독하기도 난망한 일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인권의 시각을 범죄자로만 맞춘 것이 아닌지 돌이켜 볼 문제입니다.
서진환 같은 누범자(累犯者)는 평생 많은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깁니다. A씨의 남편 박모(40)씨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전과 11범짜리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줬겠나”며 “성폭행이라는 거 당하면 온 가족이 고통받는데, 그 세월을 합하면 몇 백 년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어떤 사람은 범죄자에게도 인권이 있다고 한다. 그럼 아내가 죽은 나는, 엄마가 사라진 유치원 다니는 우리 딸아이의 인권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런 악마에게 얻어맞고 죽은 우리 아내는 그럼 뭔가. 이 나라는 어떻게 사람을 죽인 사람만 인권이 있는가”라며 울었습니다.
형량(刑量)을 어떻게 정할지도 사회적 숙제입니다. 재판부는 서진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사형을 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피고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 숨 쉬는 것 자체가 국가나 사회의 유지, 존립과 도저히 양립될 수 없을 지경은 아니다"고 밝혔습니다. 서진환은 면회온 옛 교도소 동료에게 “감옥 안에서 편하게 죽는 게 낫다. 차라리 잘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