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 내용 중에는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그래비티(Gravity)’는 중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는 더도 덜도 아닌 중력(지구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력은 인간에게 곧 ‘삶’입니다. 그러니까 ‘그래비티’는 ‘삶’을, 그 원형을, 군더더기 없이 담아냈습니다. 그리고 관객 역시 군더더기 없는 삶의 원형질을 고스란히 받아 안습니다.

이 영화가 SF의 신기원이라 불리며 찬양 받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오염되지 않은, 세상에 갓 나온 신생아 같은 ‘삶’을 두 손 가득 조심스럽게 받아 안은 관객은 자신이 살아 있다는 그 단순한 사실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새삼 깨닫는 것입니다.

6번째 ‘팝콘남녀’에서는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만발하고 있는 영화 ‘그래비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이수진 기자(이하 이) : 이번주는 전세계적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죠. '그래비티'가 개봉을 합니다. 이 영화 IMAX 상영관이 매진이 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데요.

안병수 기자(이하 안) : 어디서 들리죠?

: 여기 저기서… (웃음)

: 이 영화가 이미 영화제에서 상영돼서 유명한 감독들의 칭찬이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죠.

: 좀 과하다시피 한 느낌이 들 정도로…

: 영화 내용부터 소개해주시죠.

: 영화 내용은 간단한 이야기예요. 여자주인공이 우주정거장 수리를 하는 사람이에요. 6개월 간의 짧은 훈련을 받고 급파됐는데, 우주정거장을 수리하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인해서 우주 미아가 되고 여러가지 험난한 과정을 헤쳐가는 내용입니다. 이야기는 굉장히 간단해요.

: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을 보면 일단 산드라 블록과 조지 클루니가 출연하고요.

: 그런데 실질적인 주인공은 산드라 블록의 거의 1인 무대라고 볼 수 있고요. 조지 클루니는 우정출연 정도…

영화 '그래비티(Gravity , 2013)' 스틸샷

: 이제 '그래비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제가 지금부터 스포일러를 평소보다 많이… (안 : 평소보다 많이면 그냥 영화 다 얘기하겠다는 거네요?(웃음)) 아예 작정하고 스포일러를 이야기 하려고 해요. 혹시 영화를 못 보신 분이라면 안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이 영화를 본 감독들이나 평론가들이 주로 하는 이야기가 'SF 영화의 신기원이다. 이 영화를 기준으로 이전의 SF와 이후의 SF로 나뉠 것이다'… 이 정도까지 극찬이 나왔습니다.

: '그래비티'를 두고 SF의 전후를 나눈다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이 영화가 우주 공간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직접 체험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알론소 쿠아론 감독이 연출을 했는데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보여지는 화면, 여러 가지 장치들로 인해서 실제 관객이 우주에 함께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실감나는 연출을 보여주셨어요.

: 주로 어떤 점이 그렇게 실감이 나나요?

: 일단 영화가 '롱테이크'로 시작을 합니다. 약 20분 정도의 롱테이크 장면인데…

: 카메라 하나로 왔다, 갔다 하면서 찍는 거예요?

: 네, 커팅 없이. 그런데 실제로 20분을 촬영한 건 아닐 테고요, 여러 가지 CG 같은 기법을 사용 했겠죠. 그렇게 20분을 커팅 없이 죽 이어지는데요.

: 그런데도 지루하지 않다?

: 저는 몰랐어요, 롱테이크인지도… 화면이 커팅되는 순간 '아, 지금까지 롱테이크였구나' 라고 느끼게 됐어요. 그러니까 이 롱테이크 장면이 뭐냐하면, 산드라 블록이 우주에 떨어져서 미아가 됩니다.

영화 '그래비티' 예고편 영상

: 그래서 혼자 '헉헉'거리는 숨 소리가 계속 들리고 굉장히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 표현이 되는데, 화면은 끊기지 않고 산드라 블록의 모습을 계속 촬영하다가 서서히 카메라가 패닝(Panning)하면서 슬그머니 산드라 블록의 시선으로 바뀌어요. 그러면 헬멧 안의 장면이 나오는데 헬멧 안에서 밖으로 우주가 보이고, 주인공의 시점이니까 소리도 굉장히 가깝게 들리겠죠? 그렇게 시점이 이동해요. 그러면서 관객이 산드라 블록의 입장이 돼서 우주에 혼자 떨어진 것 같은 체험을 하게 되는 거죠. 그리고 항상 우주 SF 영화를 보면 산소가 매번 떨어져요.(웃음) 마침 산드라 블록도 산소가 떨어지는데 계속 숨을 헐떡거리는 거예요.

: 그러면 산소 빨리 떨어지는데…

: 그러니까요. 그걸 보면서 관객들은 '숨 좀 몰아쉬지 말라'고 속으로 계속 얘기를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가 어떻게 통신이 이뤄져서 우주 유영의 달인 조지 클루니가 산드라 블록을 찾아서 탁 잡아요. 거기에서 롱테이크가 끝나는데요. 지금까지의 과정이 정말 숨막히게 그려집니다.

: 지금까지 설명 자체가 숨이 막혀요.(웃음) 그러니까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연출 기법 등으로 승부를 봤다는 거죠?

: 이 영화는 화려한 SF적 기법을 선보이려고 한 영화가 아니라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노력한 영화에요. 화려한 특수효과 등을 기대하고 극장에 가시면 약간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한 기대에 비해서는 정적이고 고요한 영화에 가까워요.

: 방금 이야기하신 내용을 종합해보면 아련하게 영화 한 편이 떠오르죠. 스탠리 큐브릭이라는 이름이 입에서 맴돌고… 롱테이크에 고요한 우주에 있는 듯한 느낌하면 그분이 딱 떠오르는데…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말인가요?

: 당시에 우주를 정교하게 재현해서 호평을 받기도 했고 그 영화 이후에 스타워즈가 나왔죠.

: 사실 그런 영화하고는 맥을 같이 하지는 않아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스타워즈' 같은 영화들은 현실 세계관이 아니잖아요. '그래비티'는 철저하게 리얼리티에 기반한 영화고요. 그리고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롱테이크 기법을 이전 영화에서도 써서 굉장히 화제가 됐었어요. '칠드런 오브 맨'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 , 2006)'

: 해외에서는 상을 굉장히 많이 받은 것으로…

: 네, 거의 촬영상 위주로 많이 받았더라고요. 이 영화에는 굉장히 유명한 2개의 롱테이크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롱테이크 하면 관객분들이 쉽게 생각하는 게 (안 : 지루함!) 그렇죠. 예술영화에서나 쓰는 지루한 기법이라고 보는 선입견이 있어요. 우리나라 '서편제'에도 유명한 롱테이크신이 있는데 그 장면도 카메라는 가만히 있고 배우들이 저 끝에서 앞으로 움직이는… 그런데 알폰소 쿠아론과 거의 짝꿍이다시피 한 엠마누엘 루베즈키라는 촬영감독님이 계신데 이 분도 멕시코 출신이시고 알폰소 쿠아론 대부분의 작품을 같이 작업했어요. 그런데 이 분이 촬영쪽에서는 할리우드에서는 아주 유명하신데 '칠드런 오브 맨'에서 이 분이 쓰신 롱테이크는 총격신도 있고요, 카체이싱(자동차 추격전)신도 있어요. 약 4분 정도의 롱테이크신인데 굉장히 긴박하고 그 사이에 많은 사건이 일어나요. 그런데 그 장면을 롱테이크로 찍었다는 건 설계를 굉장히 잘한다는 의미죠.

: 동선을 미친 듯이 미리 설계해 놓은 거죠.

: '그래비티'에서 제가 또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이 영화는 우주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가장 넓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에요. 또 반면에 가장 좁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거든요. 이 이야기가 우주에서 탈출하는, 지구로 귀환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약간 빗대서 '출산'의 과정을 보여주기도 해요.

영화 '그래비티(Gravity , 2013)' 스틸샷

: 산드라 블록이 우주미아가 되고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우주정거장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 안에서 산소를 맡으면서 자기가 입고 있던 우주복을 다 벗으면서 쉬는데요, 그 쉬는 자세가 딱 태아의 모습이에요. 게다가 우주선 안의 케이블 같은 것들은 마치 탯줄처럼 보이거든요. 또 지구로 귀환하는데, 조그만 우주선에서 나와 물에 흠뻑 젖어 서서히 나오는데 그것이 출산의 모습과 흡사한 면이 있어요.

더 많은 이야기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영화 '그래비티'의 후일담은 '팝콘남녀' 7회에서도 들으실 수 있습니다.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팝콘남녀 6회 방송 듣기(제작 : 조선닷컴 시네마조선)] ]

[팟캐스트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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