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까지는 넓게 알되 한 분야에 능통한 'T'형 인재가 강조됐습니다. 이제는 'π(파이)'형 인재로 나아가야 합니다. 적어도 두 개 분야를 깊게 알아서 서로 융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세계적 소프트웨어 업체 어도비(Adobe Systems)의 선임 연구원으로 일하던 서봉원(43)씨가 지난 1일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신임 교수로 부임, 고국으로 돌아왔다. 구글, 페이스북 등 세계적 기업 연구직과 해외 명문대 교수직 제안을 뿌리치고 모교를 찾은 것이다.

지난 25일 서울대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서봉원 교수가 HCI(인간 컴퓨터 상호작용)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HCI(Human Computer Interaction ·인간 컴퓨터 상호작용)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는 서 교수는 "한국에서 HCI의 중요성이 알려지면서 과거보다 연구 환경이 굉장히 개선됐다"며 "해보고 싶은 연구를 마음껏 하려고 서울대로 왔다"고 했다. HCI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쉽고 편하게 컴퓨터 시스템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일반인이 최적의 환경에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웹사이트를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포토샵' 같은 복잡한 소프트웨어를 포토샵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 교수는 최고 권위의 공학학회로 여겨지는 ACM 주관 국제학회와 IEEE 주관 국제학회에서 최고 논문상을 세 차례나 받았다. 그가 쓴 논문 20여편은 피인용 수가 2500여건에 달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HCI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관련 학회가 열리면 2000여명이 몰리고 삼성·LG 등 기업에서도 경쟁적으로 HCI 분야 인재들을 영입하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서 교수는 1998년 미국으로 갔다. 그는 2005년 메릴랜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당시 최고 연구기관이었던 제록스 팔로 알토연구소에 들어갔다. 2011년엔 어도비에 선임 연구원으로 스카우트돼 어도비 차세대 주력 사업인 디지털 마케팅 개발팀을 이끌었다.

15년 미국 생활을 마치고 조국으로 돌아온 서 교수는 "미국에서 최고의 대우를 받았지만 항상 한국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고 했다. 서 교수의 서울대행에는 자신과 버금가는 HCI 권위자 이준환 서울대 교수의 강한 권유도 있었다. 둘은 미국에서 HCI를 연구하는 한국인이 둘뿐이었던 탓에 관련 세미나마다 마주치면서 인연을 맺었다. "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이 교수의 제안에 서 교수의 마음이 움직였다.

서 교수는 "서울대생들을 가르쳐 보니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하다"면서도 "학생들에게 수동적인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해외 인턴들은 능동적이며 자기 주도적이죠. 나를 뛰어넘으려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앞으로 한국은 굉장한 기회의 땅이 될 겁니다. 한국 젊은이들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