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입장을 정리해 말씀드리겠습니다."
4일 오전 1시 45분 전두환(82)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49)씨는 18시간의 검찰 조사 뒤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면서 취재진의 자진 납부 의사를 묻는 말에 이렇게 대답했다. 그간 전씨 일가 측이 "현재 검찰이 재산 대부분을 압류해 놔서 자진 납부하려 해도 어려운 상황"이라던 태도에서 변화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었다.
전씨 일가의 이런 태도 변화는 전씨 일가에 대한 검찰의 압박 수위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씨의 처남 이창석(62)씨가 재용씨 등과 경기도 오산의 부동산 등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세금을 모두 124억여원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고, 재용씨가 3일 전격 소환된 데 이어 전씨의 장남 재국(54)씨까지 소환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씨 측으로서는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노태우(81) 전 대통령 측이 미납 추징금을 완납하는 상황으로 가자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자진 납부 논의와는 별도로 전씨 일가가 미납 추징금 1672억원을 완납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전씨 일가의 변호를 맡은 정주교 변호사는 최근 본지에 "검찰이 압류한 재산 가액이 800억원이 넘는 것으로 보도되는데 실제로는 한참 못 미친다. 부동산에 설정된 빚이 많다"며 현실적 어려움을 강조했다.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재국·재용씨가 운영하는 시공사와 비엘에셋의 사정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논의가 진행됐다는 건 알고 있다"며 자진 납부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어떤 재산을 내놓을지는 잘 모른다"며 말을 아꼈다.
일각에서 전씨 일가가 800억원가량을 자진 납부하겠다는 얘기가 나온 상황에서 검찰이 자진 납부에 관해 입장을 표명했다가 자칫 '흥정'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