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강신주의 다상담'(동녘)은 북디자인이 '촌스러워서' 더 눈에 띈다. 붉은 바탕 표지에 다른 이미지 없이 제목만 큼직하게 썼다. 둔탁하고 기울어진 글씨체가 앞으로 돌진하는 듯한 느낌. 철학자 강신주가 독자 고민에 던지는 '돌직구 해법'을 서체로도 표현한 것이다. 인디밴드 '장기하와 얼굴들'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음반 재킷을 디자인했던 김기조씨 작품이다. 김기조씨는 "원고를 다 읽고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형태감을 한글 레터링으로 표현했다"고 했다.

표지 글꼴에 복고 바람

책 표지에 '복고체'가 많아졌다. 1980년대 영화 간판이나 반공 포스터에 쓰였던 것처럼 오래된 느낌을 살리는 것. 지난 6월 출간된 'B끕 언어'(네시간)도 '일부러 촌스럽게'가 콘셉트였다. 노란색 표지에다 제목은 궁서체로 썼고, 박카스병 그림 안에는 옛 포스터에서 많이 쓰던 휴먼둥근헤드라인체를 변형해 부제를 썼다. 김혜정 네시간 편집장은 "비속어의 어원과 의미를 파헤치는 책이라 표지에도 '싸구려' 느낌을 강조한 것"이라고 했다.

최근 출간된 '천개의 파도'(나무의철학)는 투박한 제목 글씨가 표지 전체를 가득 메운다. 2004년 스리랑카 남부 해안을 덮친 지진해일로 가족을 잃어버린 여성이 상처를 딛고 회상하는 내용. 강수진 디자이너는 "추억을 되살리는 내용이라 서체를 일부러 복고풍 느낌으로 살렸다. 고딕체를 바탕으로 자음·모음의 크기와 두께를 변형시켰다"고 했다.

최대한 단순하게 뼈대만

세련된 북디자인은 이미 이미지 포화 상태다. 화려한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이 퇴조하면서 타이포그래피(글꼴 디자인)가 이미지의 중심으로 옮겨온 것. 글자 서체만으로 이미지화·상징화하는 것이 최근 그래픽이나 음반·북디자인의 흐름이다.

프로파간다 출판사가 펴낸 '공포영화 서바이벌 핸드북' '좀비사전'도 글꼴만으로 표지를 만들었다. 다른 배경 그림 없이 글자의 움직임만으로 피가 흐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신간 '끈·자·그림자로 만나는 기하학 세상'(다른) 표지를 디자인한 박성경 '하이파이' 대표는 "과다하게 포장하지 않고 뼈대만 남기는 식으로 북디자인이 바뀌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는 화려한 이미지를 많이 써야 서점에서 눈에 띄었지만 이제는 '기교를 부리지 않는 기교'를 부리는 것이 비결이라는 얘기.

조악한 북한 글씨체?

비뚤어진 각도나 획의 삐침, 조악한 느낌이 '삐라'에서 본 북한 글씨체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인터넷에선 '광명납작체' '옥류체' 등 북한 한글 폰트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북디자이너들은 "북한체는커녕 기존의 한글 폰트도 아니다"라며 "개발된 서체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한글을 글자로서가 아니라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해 새로 '그리는' 것"이라고 했다.

김기조씨는 "한글의 형태적 특징을 활용해 이미지화하려는 시도"라며 "한글은 초·중·종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정해진 공간에 따라 얼마든지 조형적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픽디자이너 박금준(601비상 대표)씨는 "1920년대 유행했던 '구성주의'가 요즘 그래픽과 책 표지에서 많이 보인다"며 "기성세대와 사회에 대한 저항이나 가벼운 허무, 추억 코드가 맞물려 주목받는 것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