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전선하 기자] 영화 ‘마지막 4중주’가 소규모 개봉한 예술영화로서는 이례적으로 개봉 25일 만에 7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몰이 중이다. ‘마지막 4중주’는 25년간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현악4중주단 ‘푸가’의 첼리스트이자 정신적 멘토 피터(크리스토퍼 월켄)가 갑작스럽게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면서 푸가 멤버들의 삶과 음악이 기로에 서게 된 모습을 담은 영화로 현악 4중주에 삶을 빗대 관객들의 인생을 위로한다. 관객이 알지 못하는 영화 속 설정의 비밀을 짚었다.

◆ 파블로 카잘스 에피소드가 실화?

예상치 못했던 삶의 변화 앞에서 심각한 고민을 하는 와중에도 대학 교수로서 제자들을 양성하는 일을 계속하던 피터는 수업 시간 중 전설적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와의 일화를 학생들에게 들려준다. 학생 때 카잘스를 만나서 최악의 연주를 선보였으나 뜻밖의 칭찬을 들은 후 그가 성의 없는 태도를 보였다고 생각해 더욱 화가 났지만 이후 다시 만나 이유를 들으니 ‘단 한 소절일지라도 즐겁고 고마웠으니 칭찬을 했다’는 답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 일화로 슬럼프에 빠져 있던 제자들을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격려하며 지혜로운 스승의 모습을 보인다.

영화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과 대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 장면은 파블로 카잘스만큼이나 전설적인 첼리스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가 겪은 실화다. 러시아 출생의 미국 첼리스트로 베를린 필의 수석 연주자를 지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는 그의 자서전 ‘첼리스트’ 에서 20세기 첼로의 거장으로 불린 파블로 카잘스와의 인상 깊었던 두 번의 만남에 대해 술회했고, 야론 질버만 감독은 이에 영감을 얻어 피터와 카잘스의 에피소드로 구성했다.

◆ 푸가 모델은?

현악4중주단 푸가의 실존 모델 또한 있다. 감독에 따르면 모델로 삼은 현악4중주단은 총 세 팀으로 그 중 첫 번째가 전설적인 과르네리 현악4중주단(Guarneri String Quartet)이다. 과르네리 현악4중주단은 40년 동안 함께 연주한 세계 최고의 현악4중주단이다. 팀에서 가장 연장자인 첼리스트 데이빗 소이어가 은퇴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때, 나머지 팀원들은 팀을 해체할지 유지할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들은 소이어의 수제자인 보자르 트리오(Beaux Art Trio)의 첼리스트 피터 와일리가 합류한다면 팀을 유지하기로 결단을 내렸고 결국 그가 합류하게 됐다. 그들은 그 후 몇 년 더 팀을 유지하다가 해체했다.

두 번째 팀은 이탈리안 현악4중주단(Italian String Quartet)인데, 3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로 구성된 팀이다. 여성 단원이 세 명의 남성 단원들 모두와 사귀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들은 곡을 암기해서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그들의 곡 해석에는 항상 음악적 긴장감이 존재하게 되고, 그 누구도 필적할 수 없는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냈다.

세 번째는 뉴욕의 에머슨 현악4중주단(Emerson String Quartet)으로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따로 지정돼있지 않고 두 명의 바이올린 주자가 번갈아서 맡는다는 특징이 있다.

◆ 피터의 아내 역 안네 소피 폰 오터 출연 비하인드 스토리는?

1년 전 세상을 떠난 피터의 아내로 특별출연해 클래식 애호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 안네 소피 폰 오터는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성악가 중 한 명으로 유명 지휘자, 오케스트라, 음반사로부터 가장 많은 러브콜을 받고 있는 스웨덴 출신의 메조 소프라노이다. 감독에 따르면 원래는 이 역할을 맡는 성악가에게 바흐의 아리아 '이젠 충분하네(I Had Enough)'를 부르게 하려고 했지만 안네 소피 폰 오터의 추천으로 오페라 삽입곡 '사자(死者)의 도시(The City of Dead)로 변경됐다. 특히 이 노래는 죽은 아내를 그리워한 나머지 어딜 가든지 아내의 모습을 보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아 ‘마지막 4중주’의 스토리와 잘 맞아 떨어져 이견이 없었다.

◆ ‘4개의 4중주’와 ‘노인들’

‘마지막 4중주’는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은 아마도 모두 미래의 시간 속에 있고 미래의 시간은 과거의 시간에 들어있네”라는 TS 엘리엇의 시를 읽는 피터의 대사로 시작한다. 이 시는 T.S 엘리엇이 베토벤의 후기 4중주곡들에 영감을 받아 쓴 ‘4개의 4중주’라는 시로, 구조적으로 베토벤 4중주와 비슷한 점이 많다. 뿐만 아니라 시에서 이야기 하는 ‘지금’이라는 개념은 ‘마지막 4중주’가 탐구하는 주제이기도 하기에 야론 질버만 감독은 시를 사랑하는 캐릭터인 피터의 대사를 통해 이 시를 작품의 서두에 차용했다.

중반에 줄리엣(캐서린 키너)이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어린 소녀가 읊는 “사람들은 노인들이 죽을 걸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을 진심으로 애도하지 않습니다”라는 시는 미국 시인 오그덴 내쉬의 ‘노인들’이라는 작품이다.

감독은 “그 시는 사회가 노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회는 노인들에게 그저 죽음을 기대할 뿐이다. 그 장면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줄리엣의 머리 속은 피터의 은퇴에 대한 생각, 그리고 어떻게 하면 피터가 무력하게 인생의 마지막 단계로 접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어머니 없이 자라다가 피터에게 입양된 자신의 어린 시절이 마음 속에서 펼쳐지다가 현실로 돌아오면 어린 소녀가 시를 읽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현실은 '노인들이 다른 노인이 언제 죽을지 아는' 그런 현실이다”며 영화에 등장시킨 이유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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