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치료가 끝났다고 암 환자가 금세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특히 유방암 환자들은 여성성을 잃었다는 상실감, 다시는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무척 괴로워합니다."

유방암 환자들의 아픔을 담은 영화 '스마일 어게인'(감독 박유영)은 치료를 마치고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 더 외롭고 깊은 고민에 빠지는 환자들을 가족과 사회가 이해하고 보듬어 달라고 호소한다. 한 시간짜리 이 영화를 기획·제작한 사람은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교수다.

조주희 삼성서울병원 교수는 “유방암 환자들이 치료를 마치고 일상에 복귀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고민을 가족과 사회에 알리는 방법으로 영화 제작을 택했다”고 말했다. 배경은 조 교수가 제작한 영화 ‘스마일 어게인’ 포스터.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사회행동의학을 전공한 조 교수는 지난 2008년 국내 최초로 삼성서울병원에서 문을 연 '암 교육 센터'를 이끌어 왔다. 암 치료 과정에서, 혹은 치료 후 일상으로 복귀할 때 환자들이 겪는 심리적 갈등과 환자 가족들의 고민을 각종 교육 과정을 통해 덜어주는 것이 그의 주된 업무였다. 조 교수는 그러나 이 일이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암 환자와 그 가족의 고통을 서로에게 이해시키려면 "말이나 교육 자료 대신 영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해 영화 제작에 뛰어든 것이다.

그는 환자 육성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위해 유방암 환자 30명을 직접 심층 인터뷰하고, 전국 병원에 입원한 환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도 했다. 환자 인터뷰 일부는 영화 말미에 실렸다. 하지만 암 교육 센터의 예산만으로는 영화 제작비의 5분의 1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모자란 나머지 제작비는 박유영 감독과 배우들, 그리고 영화사 울림의 재능 기부로 채웠다.

영화에는 두 유방암 환자가 나온다. 유방암 발병 전에는 웃음치료 강사로 인기를 누렸던 '숙향'. 치료 마친 지 2년도 더 지났지만 집에만 틀어박혀 지낸다. 집안일도 팽개치고 우울해하는 그에게 남편도 짜증을 낸다. "아직도 환자야? 가족은 안중에도 없어?"

아직 미혼인 젊은 환자 '진주'도 절망스럽긴 마찬가지다. "더 이상 일도 할 수 없고, 결혼·출산도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독한 치료를 이겨내도 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나"란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

진주는 연애·결혼·출산 그리고 직업이라는 인생의 큰 결정을 앞두고 있는 20~30대 젊은 유방암 환자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런가 하면 숙향은 남편과 자식을 돌보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런 그를 감싸주지 못하는 가족을 원망하는 중년의 유방암 환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조 교수는 가족도 사회도 암 환자들을 충분히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인사상 불이익이 있을까 봐 환자들은 직장에 알리지도 못하는데, 자리 비워놓고 기다려 주는 회사는 드물죠. 결국 유방암 환자의 3분의 2가 일자리를 잃습니다."

그는 "암의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며 "가족과 환자가 마음의 문을 열고 솔직하게 얘기하며 이겨나가야 하는데 가족 간 대화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쉽지 않은 일"이라고 했다. 환자들에겐 "간호와 기다림에 지친 가족의 마음을 헤아려줄 필요도 있다"고 당부했다.

이 영화는 6일 오후 5시 30분 삼성서울병원 대강당에서 시사회를 가진 뒤 유튜브와 암 교육 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 공개된다. 올가을에 열리는 세계유방암학회에서도 영문 자막을 입힌 DVD로 무료 배포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