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면 온갖 애니메이션이 대거 개봉한다. 어린이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해 각축을 벌인다. 이 가운데 어린 시절 서양동화에서 흔히 접하고, 상상 속에서 꿈꿨던 난쟁이족이 등장하는 전체관람가 등급의 미국 애니메이션 두 편을 살펴봤다. 1일 개봉한 실사 결합 ‘개구쟁이 스머프2’(감독 라자 고스넬)와 7일 개봉하는 ‘에픽: 숲속의 전설’(감독 크리스 웨지)다.
스머프는 숲속 버섯집에서 사는 파란 피부를 지닌 쥐만한 크기의 난쟁이들이다. ‘스머프2’는 이들의 피부색을 비롯해 푸른 물과 전기장 등의 시각효과도 푸른색이 주조다. ‘에픽’은 초록 숲을 배경으로 나뭇잎으로 옷을 해입는 ‘리프맨’을 포함한 숲의 요정들이 등장하는 녹색이 주조다. 각각 시원함과 싱그러움을 안기면서 한여름, 냉방 잘 된 영화관 피서용으로 제격이다. 두 작품 모두 1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인만큼 비주얼은 아주 매끄럽게 뽑혀나왔다.
◇미취학 아동용 ‘스머프2’ 대 어른들도 즐길 만한 ‘에픽’
벨기에 만화가 페요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개구쟁이 스머프’는 1981년 미국에서 TV시리즈로 만들어졌다. 2년 뒤 한국에서도 방영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개구장이 스머프’로 방영되던 이 만화영화는 1988년 1월19일 문교부 고시에 따른 표준어규정에 따라 ‘개구쟁이 스머프’로 타이틀이 바뀌었다) 요즘 추억 마케팅의 주요 타깃인 30,40대와 그들의 자녀를 끌어들이기에는 더할 나위없는 요건이다. 그러나 1편 뉴욕에 이어 2편에서는 무려 파리를 배경으로 했지만 작품의 차원이 너무 떨어진다.
대사를 이해할 만한 수준이 아직 안 돼 슬랩스틱 코미디와 과장된 몸짓에 열광하는 유치원생 이하 유아라면 모를까, 그 이상이라면 도저히 참고보기 어려울 정도다. 비논리적이고 유치한 전개와 중구난방 편집은 둘째치고 악당 마법사 가가멜(행크 아자리아) 목소리를 더빙한 개그맨 박명수의 발음은 알아듣기 힘들다.
1편도 2편과 마찬가지로 미국 평단의 악평 세례를 받았지만, 스머프 캐릭터에 대한 애호와 기대감 때문인지 꽤 괜찮은 수익을 거뒀다. 고무된 일본계 소니픽처스애니메이션은 2015년 3편까지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관객들이 이번에도 또 선택을 해줄는 지는 물론 미지수다.
반가운 것 하나는 ‘개구쟁이 스머프’가 처음 KBS TV로 방송될 때 파파스머프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최흘(77)이 다시 이 역을 맡아 추억에 잠기게 한다는 것이다. 성인관객 대상 복고마케팅용으로 주효할 텐데 왜 제대로 홍보하지 못하나 의아할 따름이다.
반면 한국인들도 많이 진출하며 독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미국의 애니메이션 전문스튜디오들은 비주얼 면에서는 물론 완성도, 짜임새 등이 어른들이 봐도 빠져들 수준의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 내고 있다.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의 크리스 웨지가 감독한 창작 애니메이션 ‘에픽’은 숲속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연광을 비춘 듯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이고 세밀하게 표현해낸 것 만으로도 볼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제작사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의 한국인 스태프 이상준씨가 수석 캐릭터 디자이너로 참여하면서 리프맨들이 걸친 갑옷과 투구에서 신라화랑의 복색을 떠올리게 됐다. 비단같은 질감의 날렵한 나뭇잎 옷으로 표현됐다. 민들레 솜털, 솔방울을 이용한 가발과 모자, 꽃잎을 활용한 드레스, 쥐털가죽 코트 등 그 상상력이 감탄을 자아낸다.
캐릭터와 스토리가 전형적이기는 하다. 숲의 생명을 지키려는 선한 요정들과 이를 파괴하려는 악당의 대결, 독립적인 소녀와 말썽꾸러기에서 전사로 성장해가는 소년, 둘 사이의 우정과 연애감정, 이들을 이끌어주는 전사들의 리더 등은 지난 2월 개봉한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잭 더 자이언트 킬러’를 연상시킨다. ‘홀쭉이와 뚱뚱이’라는 고전적 코믹파트를 맡은 달팽이 멉과 민달팽이 그럽의 듀오 연기도 역시 전형적이기는 하지만 이해하기 쉽고 무척 재밌는 것이 사실이다.
이 애니메이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물리역학의 적용이다. 요정들은 벌새를 타고 다닐 만큼 아주 작은 존재들인데, 개구리밥을 밟으며 물위를 걸어 다닐 수도 있고 나뭇잎을 낙하산처럼 이용하기도 한다. 크기와 무게가 줄어든만큼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 먼지처럼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을 아주 과학적으로 표현해냈다. 인간에서 갑자기 정령이라고 할 정도로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을만큼 작게 변한 엠케이가 처음에는 날아다닐 듯 가벼워진 몸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곧 고공낙하와 하이점프에 익숙해지는 장면도 큰 즐거움을 준다. 엠케이의 아버지인 괴짜 교수 봄바가 숲속의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연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각종 장비들도 세심하게 설정됐다.
오리지널 목소리 녹음에는 다수의 스타들이 참여했다. 엠케이 역은 아만다 사이프리드, 리프맨 막내전사 노드 역은 ‘헝거게임’ 시리즈의 조시 허처슨이 맡았다. 리더 전사 로닌 역은 콜린 패럴, 숲의 여왕 타라 역은 비욘세 놀스, 악당 맨드레이크 역은 두 차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탄 크리스토프 월츠 등이 맡아 실사 연기 못지않은 목소리 연기를 선보인다. 한국어 더빙판에는 주요배역에 아이돌 가수들이 참여했다. 엠케이 역은 카라의 한승연, 노드 역은 2AM 정진운이다.
◇억지 가족사랑 교훈 '스머프2' 대 자연의 소중함 일깨우는 '에픽'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인만큼 진지한 교훈이 빠지면 감동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스머프2'는 점점 증가하는 부모의 이혼과 재혼, 또 공개입양으로 늘어나는 양부모와의 관계와 사랑을 주제로 했다. 가가멜이 스머프들을 유혹, 파멸시키기 위해 창조한 스머페트, 벡시, 해커스가 황새를 타고 파리의 하늘을 나는 장면은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준다는 서구의 전설을 연상시킨다. 가가멜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신에게도 악마적 본성이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스머페트에게 파파스머프가 조언하는 "어떻게 태어난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대사는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문제는 이러한 교훈을 드러내는 구성이 작위적이고 길게 늘어진다는 점이다. 스머프들을 도와주는 인간 패트릭(닐 패트릭 해리스)에게 새 아버지 빅터(브랜든 글리슨)을 등장시켜 두 사람의 갈등이 봉합되도록 하는 것 등이 그렇다. 패트릭의 아들 블루(제이콥 트랑블레)까지 등장인물들만 늘어나며, 스머프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삶의 모습을 기대했던 팬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에픽’은 자연보호, 생명사랑이라는 뻔한 주제를 담고 있지만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교훈을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도록 잘 버무려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나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존재들을 상상하게 되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된다. 또 이러한 미물들의 움직임까지 세세하게 포착해 아름다운 세계를 창조해낸 제작진의 공력에도 감사하고픈 마음이 든다. 아버지와 딸이 협공을 벌이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서 가족사랑이라는 흔한 주제도 똑 떨어지게 마무리된다.
한편 두 작품 모두 최신기기를 적극 활용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특기할 만하다. ‘에픽’에서는 아이폰에 녹음된 박쥐 쫓는 초음파를 적시에 사용하는 신이 있다. ‘스머프2’에서는 가가멜이 소니의 태블릿PC를 사용하고 사교스머프가 스머프사회의 소셜 네트워크 스멉웹과 스멉북 관리를 담당하는 신이 나오지만, 딱히 전체적 스토리와 짜임새있게 연결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