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관리자로 있던 비행기 공장에서 비행기를 그리며 놀았다. 비행기를 좋아하던, 나약한 그는 힘과 속도를 향한 욕구를 갖고 있었다. 비행기 조종간 대신 붓을 잡은 미야자키 하야오(72)는 애니메이션 감독이 돼 '바람의 계곡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 등에서 하늘을 마음껏 날았다. '벼랑 위의 포뇨' 이후 5년 만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하늘과 비행 장면이 가득하다. '바람이 분다'는 20일 일본에서 개봉하자마자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베네치아 국제영화제는 올 9월 열릴 영화제 경쟁작으로 선정했다고 25일 밝혔다. 26일 미야자키 감독을 일본 도쿄도(都) 코가네이시(市)에 있는 감독의 아틀리에 '니바라키'에서 만났다.
◇소년 시절의 파일럿 꿈 담은 신작
'바람이 분다'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의 주력 전투기인 '제로센(零戰)'의 설계자로 알려진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郞)'의 삶을 그렸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라는 폴 발레리의 시 제목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내내 "살아라"라고 외치고 있다.
영화 속 전투기에는 일장기의 빨간 원이 그려져 있고, 지로와 그의 동료는 무기를 실을 전투기를 설계한다. 전쟁 무기를 만든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에 대해 미야자키 감독은 "그 시대를 살았기 때문에 죄를 업고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대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그를 옳다, 그르다고 할 수 없다. 열심히 살았지만 비참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열심히 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는 이 작품을 만들면서 내 평생 가장 많은 '히노마루(빨간 원)'를 그렸어요. 하지만 나중에 그것들이 다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장면이 나와요. 여기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의견이 있겠지요."
◇"별거 아닌 아베 문제로 싸울 필요 없다"
미야자키 감독은 자신이 운영하는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무료로 발행하는 소책자 '열풍' 최신호에 '헌법 개정, 당치도 않다'라는 제목으로 아베 정권의 헌법 개정(전쟁을 금지한 헌법 9조를 바꾸려는 것) 기도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헌법 개정뿐만 아니라 일본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가 사죄·배상해야 한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이날 미야자키 감독은 "헌법 개정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밝혔을 뿐이다. 이 문제로 인터넷에서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데, 나는 인터넷을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인지 모른다"고 했다.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견해를 묻자 미야자키 감독은 갑자기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답변을 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선 한국과 중국에 사과를 해야 한다. 예전에 청산했어야 하는데 지금 다시 오르내리는 게 치욕이다. 예전에 일본 군부가 백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도 귀하게 대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의자에 앉으려던 그는 다시 일어나더니 말을 이어갔다. "1989년도에 버블 경제와 구(舊)소련이 붕괴됐을 때 일본은 역사 관념도 함께 잊어버린 것 같다"며 "역사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일본은 경제 이야기만 했다. 그러니 경제가 안 좋으면 모든 걸 잃어버리는 것이다. 역사 관념이 없는 나라는 망한다"고 했다.
그는 "동아시아의 한국·중국·일본은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이렇게 변화가 많은 시기에 별거 아닌 문제로 싸워선 안 된다"고 마무리를 했다. "아, 그 별것 아닌 건 바로 아베 총리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그는 곧 사라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