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 화두를 모아 놓은 자료집을 뒤적이다가, 20년 전 열광하며 봤던 홍콩 무협 영화 '신용문객잔'을 떠올렸다. 장만옥·임청하에 양가휘·견자단 등 추억의 스타들이 대거 등장했던 본격 액션 스펙터클 무협물이다.
객잔(客棧), 그러니까 중국의 지방 상인들이 이용하던 한 여관에 강호(江湖)의 고수들이 집결하며 펼쳐지는 난장(亂場)이다. 나름, 고전 영화다.
'신용문객잔'을 떠올리게 된 것은 당시 청춘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만옥·임청하의 결연하고도 진지한(왜 그리 진지했는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표정과 몸짓 때문이 아니다. 영화 막판 드넓은 사막에서 신출귀몰하며 무림의 최대 고수를 식칼 하나로 난도질하던 만주족 요리사 때문이다.
여관 주방에서 고기를 다듬으며 다진 칼놀림으로, 천하를 호령하던 절세 고수를 허무하게 무너뜨렸던 비(非) 강호 출신 요리사는 존재 자체로 전율과 쾌감을 선사했다.
그런데 그 전율과 쾌감은 어디서 온 것일까? 무언가를 정식으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도 최상의 교육을 받은 사람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 제도권을 무색하게 하는 인간 능력의 편재(遍在)가 가상만은 아니란 사실을 확인하는데서 오는 쾌감 아닐까?
그 능력이 강호에서 통하는 무공이건, 정신적 고수들 사이에서 빛을 발하는 지혜이건 마찬가지다. 사회가 아무리 기득권 세력을 중심으로 강건하게 시스템화 되어도, 그 시스템을 무력화할 수 있는 재능이 예상치 못한 곳에 두루 잠재해 있다는 사실은 천만 다행한 일이다.
자, 이쯤 해서 옛날 홍콩 영화를 추억하게 만든 선문답(禪問答) 얘기를 꺼낼 때가 된 것 같은데, 회고 취미를 유발한 선가(禪家)의 자그마한 에피소드 역시, 그렇게 지혜의 편재를 확인시켜주는 즐거운 일화다. 무림 고수를 무찌른 만주족 요리사와 비슷한 직업군인 푸줏간 주인이 등장한다는 점도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마조 도일(馬祖 道一·709~788)의 법통을 잇는 것으로 전해지는 보적(寶積) 선사가 깨우친 얘기다. 선사가 어느 날 번잡한 시장을 거닐다가, 푸줏간 옆을 지나게 된다. 때마침 돼지고기를 사려는 손님과 푸줏간 주인의 거래가 시작된다. 진열대 위에 올려놓은 고기를 유심히 살펴보던 손님이 “최상등품으로 한 근만 달라”고 말한다. 내내 웃는 얼굴에, 고기를 잘라내기 위한 칼 하나 달랑 든 푸줏간 주인의 답변-.
“손님, 어디인들 최상품이 아니겠습니까?”
순간, 보적 선사의 귀가 번쩍 뜨인다. 삶의 지혜와 진리가 어디 후미진 산 속, 어두운 곳에 따로 감추어져 있던 적이 있던가?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발붙이고 서 있는 바로 이곳이 진리의 장소일진대, 우리는 애써 먼 곳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찾으려고 한다.
삶을 통째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푸줏간 주인의 말마따나 어디인들 최상의 장소가 아니겠는가? 무엇인들 최상품이 아니겠는가?
시장 통의 저급한 대화 중에도 기어이 자신을 노출하고 마는 게 삶의 비의(秘意)일 것이다. 번잡한 시장의 일상적 대화가 때론, 산중의 수십년 수행을 무색하게 만들기도 한다. 사막 한 복판에서 만주족 요리사에게 당한 무협 고수처럼, 보적 선사 역시 푸줏간 주인에게 한 방 얻어맞고 얼얼한 상태였겠지만, 정신만은 한없이 맑았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 이지형은?
종교·명리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합리'가 절대 선(善)으로 통하는 세상에서 '비합리적인 것들'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파격과 논리적 비약을 일삼는 선(禪) 화두에 대한 관심도 같은 맥락이다. 사주·주역을 소재로 한 에세이 『바람 부는 날이면 나는 점 보러 간다』를 썼고, 가족애를 다룬 『아버지에게 묻다』를 편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