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종시가 난데없이 등장한 '거주자' 때문에 골머리라고 한다. 그 불청객은 바로 '뱀'〈조선일보 6월29일자 A8면〉. 아파트에도, 세종시 정부청사에도 뱀이 고개를 내민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살무사에 꽃뱀까지 종류도 가지가지다. 세종시의 한 아파트에 입주한 김모씨는 "작년 입주 때부터 아파트에 뱀이 출몰해 주민들이 항의한 적이 여러 차례"라면서 "독사도 있다고 하니 아이들 때문에 여간 걱정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세종시 첫 마을' 인터넷 카페엔 목격담과 항의 글이 줄을 이었다. 아파트와 청사엔 뱀을 잡기 위한 그물도 설치됐다.
이뿐 아니다. 최근 들어 서울 마포구 서교동을 비롯해 강원도 춘천, 태백 등지, 경남 통영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주택가에 뱀이 출몰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 신월동을 들끓게 한 수십 마리 뱀의 정체는 건강원에서 탈출한 것들이었지만, 최근 들어선 좀 다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뱀들이 주택가에 똬리를 틀거나 스멀스멀 기어다니는 것이다. 마치 계사년(癸巳年)인 올해, 자신의 해를 기념하듯 자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뱀 잡이만 수십년이라는 전문 땅꾼 세 명과 전국 유명 뱀탕 집 업주 세 명, 사설 뱀·개구리 농장주인 한 명에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물었다. 그들은 "이전보다 뱀이 워낙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38년 경력의 땅꾼은 "뱀의 개체 수가 얼마나 늘었는지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지만 체감하기에는 십수 년 전에 비해 열 배 이상 늘어난 듯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뱀이 왜 이렇게 많아졌는지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비아그라 때문에 뱀은 만세, 뱀탕 집은 우울
땅꾼들에게 좀 더 정확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뱀탕 촌'으로 유명한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일대를 찾았다. 10년 전만 해도 100여곳이 성업하고 있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 명성이 예전 같지 않았다. 주위에서 유명하다고 일러준 뱀탕 집들은 대부분 쌈밥 집이나 한정식집으로 변해있었다. 인근 식당 주인은 "뱀탕 장사가 안 돼 십년 넘은 장사를 접고 공사판에 일 나간 사람도 여럿"이라고 말했다.
이 지역에서 20년 이상 뱀탕 집을 운영했다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비아그라'라는 단어부터 꺼냈다. "뱀탕 먹으러 이 동네에 하루가 멀다 않고 찾아온 아저씨들이 죄다 비아그라에 빠져가지고…. 이 동네가 기가 세 뱀이 그렇게 많다 해서 유명해진 건데, 사람들 발길이 예전만치 못하니 당연히 문 닫는 곳이 생기지. 그럼 자연히 뱀 잡는 수도 줄고, 그럼 저절로 뱀이 늘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뱀탕 한번 제조할 때 보름에서 20일 정도 먹을 분량을 만들어 주는데 보통 뱀 100마리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일주일에 열명만 찾아도 1000마리다.
부산에서 38년 전통의 뱀탕 집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는 건강원 주인에게 전화로 물었다. 그의 대답도 비슷했다. "비아그라 그 마 땜에, 뱀 찾는 사람 줄긴 줄었지. 뱀을 왜 먹는데! 남자 정력 좋다고 다 해멕이잖아. 근데 비아그라는 깔끔해 보이고, 뱀은 아무래도 혐오감이 먼저 드니까 젊은 사람들은 많이 안 찾아요. 부산에도 나 말고 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 다 망했어."
환경부의 허가를 받고 뱀 사육 농장을 운영 중인 이재무 '원샘이 뱀·개구리 농장' 대표는 "아무래도 성기능 활력에 비아그라가 더 빠르게 효과를 보기 때문에 비아그라가 뱀탕 집 영역을 많이 침범한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비아그라 때문에 뱀탕 같은 정력제 소비가 절반으로 줄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먹는 발기부전치료제인 비아그라가 1998년 첫 출시 된 뒤 15년째. 비아그라의 등장은 '뱀 시장' 판도도 상당히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그래도 뱀탕이 단순히 스태미나, 정력 강화용만으로 쓰이는 게 아니고 허약 체질이나 폐결핵 환자 등의 기력 회복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뱀탕을 찾는 이가 아주 사라지진 않을 것"고 말했다.
◇뱀 잡을 땅꾼이 없네…
뱀이 느는 데다 땅꾼마저 부족해 뱀 숫자가 더욱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33년 경력이라는 한 땅꾼은 "예전엔 땔감 한다고 나무를 죄다 베 버렸기 때문에 뱀이 눈에 잘 띄었고, 눈에 보이는 대로 뱀을 잡아가니 뱀이 씨가 마를 정도로 적었다"면서 "최근엔 수풀도 우거진데다 솔직히 뱀 잡을 사람이 예전만큼 없어 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뱀은 보통 독사는 알을 까서 새끼를 7~10마리, 일반 뱀은 많게는 30마리까지 낳기 때문에 한두 마리만 덜 잡아도 뱀의 숫자는 크게 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부산 뱀탕 집주인은 "우리 집만 해도 땅꾼 15명 중 막내가 60세이고, 대부분 70세 이상이며 89세 된 분까지 일하고 있다"며 "젊은 땅꾼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십수 년 전 땅꾼 숫자도 많고, 뱀탕 찾는 사람도 많을 땐 서울 수원 용인 등 7군데 넘게 납품했는데 지금 그 집들이 모두 없어졌다"고 말했다.
뱀을 잡거나 뱀탕을 내릴 때 자칫 독사에라도 물리게 되면 몸이 뒤틀리거나 죽을 수도 있어 위험성이 큰 데다, 2005년 야생생물보호법이 발효된 이후로 허가 없이 야생 동물을 잡는 사람뿐만 아니라 알면서도 먹거나 유통한 사람 모두 처벌되기 때문에 '불법'까지 저지르면서 이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경상남도 지리산 근처의 한 뱀탕 집주인은 "예전엔 새끼 뱀 같은 건 마릿수에 넣지도 않는 서비스였는데, 요즘 땅꾼들은 대가리 꼬리만 붙어 있다 싶으면 크기 종류 가리지 않고 다 돈을 받아먹는다"며 "그만큼 땅꾼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이 잡아주는 대로 웃돈 주고 뱀을 사와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은 허가 없이 뱀 잡는 게 불법이라…
경기도 용문산 뱀탕 집 주인은 "여러 이유 중 단속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용문산 지역도 올 초 갑자기 시행된 단속 때문에 여러 집이 문을 닫았다. 1년 실형을 받고 복역하는 주인도 있고, 집행유예로 겨우 풀려나온 사람도 있다. 경력 30년이라는 한 땅꾼은 "작년 신월동 뱀 출몰 사건 이후 단속이 굉장히 심해졌다"며 "단속이 무서워 간판을 안 걸고 가정집에서 몰래 영업하며 명맥을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한 뱀탕집 주인은 "인기 높은 독사인 칠점사는 한 마리에 보통 50만~150만원 정도에 거래되는데, 2~3마리는 기본으로 넣기 때문에 뱀탕 가격도 300만~500만원을 호가한다"며 "보호종인 구렁이 등을 불법으로 넣는 경우는 보름치 한 제(20~30첩)가 5000만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엔 환경부의 허가 받고 농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5년 전부터 뱀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이재무 '원샘이 뱀·개구리 농장 대표'는 "임야 300평(991㎡) 이상을 보유하면 양식 허가를 받을 수 있다"며 "뱀이 한약재로는 여전히 인기인 데다, 허가받은 업체의 제품을 유통하는 건 괜찮기 때문에 돈이 많이 들긴 하지만 뱀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농장을 꾸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문산이 있는 경기도 양평군청 윤태영 주무관은 "땅꾼도 밀렵의 일종으로 볼 수 있고, 보호종을 먹거나 파는 게 모두 법으로 금지돼 있기 때문에 단속을 안 할 수 없다"며 "일단 건강원으로 영업 신고를 하면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엔 어떤 걸 제조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특별 단속을 통해 불법 영업을 제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