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담이 없는 '열린 미술관'이 돼야 한다. 도심의 랜드마크인 미술관을 담장으로 가린다면 짚신 신고 양복 입은 격이다."(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
"'열린 미술관'을 핑계로 조선시대 종친부(宗親府) 담장을 복원하지 않는다면, 경복궁 담장을 헐고 '열린 경복궁'이라 하는 것과 똑같다."(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서울 소격동 옛 기무사 터에 올 11월 개관 예정인 국립미술관 서울관 '담장' 건립 문제를 놓고 인근 주민들과 문화재 복원론자들 간에 논쟁이 붙었다.
문제의 '담장'은 1981년 정독도서관으로 이전됐다가 최근 소격동에 복원된 조선시대 종친부(국왕의 족보 보관, 왕족의 인사 조정 등을 하던 곳)를 둘러쌌던 것. 종친부 동측 율곡로 방향으로 길이 140m, 북측 북촌로 방향 길이 110m 정도다. 조선시대에 2.5~2.8m 높이로 지어졌던 이 담장은 1971년 기무사가 들어서면서 3.8m 높이까지 올라갔고, 2010년 7월 서울관 건립이 시작되며 철거됐다.
서울관 기본 콘셉트는 '담장 없는 미술관'. 뉴욕 MoMA, 파리 퐁피두, 런던 테이트모던 등 세계 유수 미술관을 모델로 했다. 실제로 삼청로에서 보이는 미술관 전면은 담이 없이 열린 구조다. 단, 종친부 옛 담장 유구(遺構)가 명확히 남아있는 곳엔 1.5m 정도의 낮은 담을 올리려 했다. 그런데 이를 두고 '더 높이 쌓자'와 '아예 없애라'는 주문이 충돌한 것. 이강원 관장을 비롯한 주민들은 "높은 '기무사 담장'으로 상권이 차단되고 동네 접근성이 떨어지는 등 피해가 막심했다"면서 담을 짓지 말라고 요구한다. 이들은 '담장 설치 결사 반대!' 현수막을 내걸고 250여명이 서명한 성명서를 미술관측에 전달하는 등 강경하다. 반면 황평우 소장 등 '문화재 지킴이'들은 "종친부 담장 원형이 많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으므로 우리 전통 담장 높이인 2.5~2.8m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차례에 걸친 주민설명회에서도 타협점은 나오지 않았고, 문화재위원회는 지난달 심의에서 "율곡로 쪽 담을 2.5m 높이로 복원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고심 끝에 중재안을 구상했다. 율곡로 쪽 담은 문화재위원회 결정대로 복원하되, 북촌로 쪽 담은 양 끄트머리 일부만 복원하고 나머지는 열어두자는 것이다. 그러나 양측 모두 고집을 꺾지 않고 있는 상황. '담 없는 미술관'과 '문화재 보존'이라는 두 가치가 충돌하면서, 총 사업비 2460억원 규모의 국책사업이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